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에서 일어난 독립운동.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충량한 신민의 양성’을 목표로 한 지배 정책과 식민지 수탈을 기조로 하는 경제 정책으로 인해 많은 고통에 시달렸다. 제1차 세계 대전을 전후하여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고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 자결주의가 제창되었다. 이런 국내외적 정세는 민족의...
경상도 개령현[지금의 김천시 개령면]에 설치되었던 조선 전기 관아 터.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은 삼한 시대에는 감문국이 있었던 곳으로, 231년 신라에 병합되고 557년에 감문주를 설치하여 기종을 군주(軍主)로 파견하였다. 687년에는 사벌주 밑에 개령군을 두고 그 밑에 감물현[어모현]·지품천현[지례현]·무산현[무풍현]·김산현을 두었다. 조선 시대[1416년]...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임천(金任天)은 1872년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당시 개령면 동부동 동민들은 동부동 뒷산에서 3월 24일과 4월 3일·4일·6일 모두 네 차례에 걸쳐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제1차 의거에는 김태연(金泰淵)·허철(許喆)·전종수(全琮洙)·최영돈(崔永敦), 제2차 의거에는...
삼국 시대 이전에 성립되었던 대부분의 소국이 그러하듯 감문국(甘文國) 또한 1700여 년의 풍상 속에 대부분의 유적이 훼손되고 멸실되어 그 흔적을 찾는 것이 쉽지는 않다. 따라서 감문국의 실체에 접근하는 방법은 제한된 사료(史料)와 전설, 문학 작품 등에 나타난 한정된 관련 자료를 통해 유추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감문국이 성립될 수 있었던 데는 먼저 청동기 시대...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화요 3인조’, ‘상해 트로이카’, ‘붉은 광장에 떨어진 붉은 꽃’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비운의 독립운동가 김단야(金丹冶). 김단야는 분단국가라는 현실상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라는 굴레에 갇혀 오랫동안 공적을 인정받지 못하다가 2007년 8월 16일 복권되어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은 인물이다. 서른일곱 살 꽃다운 청춘을 살다간 비운의 독...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교동(校洞)·옥전동·정변동·구교동(舊校洞)을 통합하면서 개령면사무소 동쪽에 있으므로 동부동(東部洞)이라 하였다. 조선 말 개령군 부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교동·옥전동·정변동·구교동이 통합되어 김천시 개령면 동부동으로 개편되었고, 1949년 금릉군 개령면 동부동으로 개칭하였다. 1971년 교...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문학이(文學伊)는 1898년 6월 1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 323번지에서 태어났다. 문응학(文應學)이라고도 불렸다. 문학이는 농민으로서 김천시 개령면 동부동에서 전개된 네 차례의 만세 시위 가운데 1919년 4월 3일에 일어난 2차 시위에 가담하였다. 개령면에서 전개된 1차 만세 시위는 서울에서 일어난 만...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도석(黃道石)은 1899년 4월 25일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 31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당시 개령면 동부동 동민들은 동부동 뒷산에서 3월 24일과 4월 3일·4일·6일 모두 네 차례에 걸쳐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제1차 의거에는 김태연(金泰淵)·허철(許喆)·전종수(全琮洙)·최영돈(崔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