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와 현대 김천 출신의 농민 운동가. 김윤하(金潤河)는 1905년에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황금동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 중앙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조철호의 감화를 받아 농촌 계몽 운동을 결심하였다. 졸업 뒤 농촌 계몽 운동을 실천하기 위해 1928년 고향으로 돌아온 김윤하는 젊은 나이에 농사일에 뛰어들어 농사 개량과 근검절약으로 20년을 한결같이 농사에 전념...
1945년 해방 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결성된 좌익 청년 운동 단체. 1945년 9월 5일 김천에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김천지방위원회가 인민위원회로 전환한 후 김천인민위원회의 외곽 조직으로서 김천민주청동맹이 결성되었다. 김천민주청동맹은 김천군의 통일된 청년 운동 조직으로서 결성되었다. 김천민주청동맹의 위원장은 일제 강점기 김천 지역의 사회운동가이면서 조선공산당재건협의회 김천그룹의...
해방 이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조직되었던 민간 자치 담당 기구. 김천인민위원회는 1945년 9월 무렵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김천지방위원회가 변경되어 발족한 것이며 미군이 들어오기 전까지 김천 지역의 자치를 담당한 민간 기구이다. 1945년 9월 초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김천지방위원회가 김천인민위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김천인민위원회는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김천지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일제 강점기와 현대 김천 출신의 사회주의 운동가. 나정운(羅鼎雲)은 1911년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모암동에서 태어났다. 1925년 학생·청소년을 모아 좌익 사상을 보급할 목적으로 김천독서구락부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31년 조선공산당 조직 운동에 가담했다가 검거되어 기소 유예로 풀려났다. 1935년에는 제2차 조선공산당 김천그룹 재건협의회 산하 조직인 농민·노동자...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지역을 포함하여 민족 해방과 계급 해방을 위하여 전개되었던 사회 운동. 3·1 운동 이후 민족 운동 상에서 나타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사회주의 사상이 대두하였다는 점이다. 일제 강점기 김천은 경상북도 지방에서 사회주의 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된 지역 중 한 곳이었으며, 대표적 공산주의자인 김단야(金丹冶)[본명은 김태연]와 황태성(黃泰成)[이명은 황대...
일제 강점기와 현대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사회지도자. 광복 후 김천 지역에는 고덕환(高徳煥)을 중심으로 하는 고파(高派)와 심문(沈文)을 중심으로 하는 심파(沈派) 사이에 대립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두 파 간에 다툼이 있었는데,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고씨 파에서는 유교계 인사 김은배를 지원하고, 심씨 파에서는 기독교계 인사 권태희를 내세워 권태희가...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상북도 김천시의 역사. 김천 지역은 삼한 시대에 감문국(甘文國)과 주조마국(走漕馬國)이 있었고 삼국 시대에는 신라가 감문국과 주조마국을 병합하여 감문주(甘文州)를 설치하였던 곳이다. 신라 때는 김산군에 속하는 산간 촌락에 지나지 않았으나, 조선 초기에 역마제도가 생긴 이후 인근 주민들의 물물 교환 및 주변 지역과의 교역 중심지로서의 역할...
해방 직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조직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산하 김천 지역 위원회. 조선건국준비위원회는 해방 전후 국가 건설 능력을 가진 한국인들이 자발적으로 근대 통일 민족 국가를 수립하기 위해 조직한 기구로, 일제가 태평양 전쟁에서 패배함으로써 조국 광복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상 아래 1945년 8월 14일 서울에서 여운형을 중심으로 건국을 준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