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공립보통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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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현대까지 경상북도 김천 지역의 교육. 1. 전근대 시기[고려·조선 시대] 고려 시대 이전에 김천 지역에 존재하였던 교육 기관은 현재 문헌상으로 확인할 수 없다. 1123년(인종 4) 각 주(州)에 학(學)을 세워서 도(道)를 널리 가르치라는 조서를 내렸지만, 이 시기 김천 지역에 학교가 설립되었다는 기록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김천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교육 기관이 설립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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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원배(金元培)는 1897년 11월 17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감호동에서 태어났다. 김원득(金元得)이라고도 불렸다. 1919년 3월 9일 김원배는 황금동교회의 조사 김충한과 장로 최용수 등이 주도한 만세 시위 계획에 참여한 후, 주남태와 함께 시위에 필요한 종이 태극기 제작을 담당하였다. 김원배는 거사 전날 종이로 태극기를 제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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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남산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21세기를 주도할 건강하고 자주적이며, 창의적이고 도덕적인 한국인을 육성하기 위하여 몸과 마음이 튼튼한 어린이, 스스로 실천하고 개성을 살리는 어린이, 새로움을 찾아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어린이, 예절을 생활화하며 바르게 행동하는 어린이를 기르는 것을 교육 목표로 삼고 있다. 1907년 10월 12일 지방 유지 석치업, 이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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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충한(金忠漢)은 1883년 10월 24일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비봉동 707번지에서 태어났다. 미국인 선교사 어드만(W.C. Erdman)의 전도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었다가 문중과 가정에서 쫓겨났던 김충한은 1906년 새로 건축한 비봉교회 초대 조사로 활동했으며, 이후 대구 계성학교를 다니던 중 목사가 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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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남산동에 있는 노래비. 「노들강변」을 작곡한 문호월(文湖月)의 공적을 기리고자 1980년 세웠다. 「노들강변」은 「아리랑」, 「도라지」, 「천안삼거리」, 「양산도(陽山道)」와 더불어 우리나라 5대 민요의 하나로 꼽히는 곡으로 1934년 신불출(申不出)이 노랫말을 짓고 박부용(朴芙容)이 불러 큰 인기를 끌었다. 김천시 남산동 남산공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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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 에서 거주 및 성장했던 작곡가·연주가·지휘자. 문호월(文湖月)은 1908년 9월 7일 지금의 경상남도 진주시 평안동 21번지에서 아버지 문덕인(文德仁)과 어머니 최종성(崔宗聖)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문윤옥(文允玉)이다. 문호월이 갓난아이 때 가족이 모두 서울로 이주했으나 정착하지 못하였다. 집안 누나의 권유로 김천시 용호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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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태안(朴泰安)은 1898년 6월 14일 김천시 황금동에서 태어났다. 평양, 서울 등지에서 3·1 운동을 목격한 김천면 황금정교회(黃金町敎會) 소사(小舍) 김충한(金忠漢)과 대구에서 3·8 만세 운동에 참여한 계성학교[현 계성고등학교] 학생 김수길(金秀吉)은 황금정교회 장로 최용수(崔龍洙), 같은 교회 소사 한명수(韓明洙)와 함께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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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 3·1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충량한 신민의 양성을 목표로 하는 지배 정책과 식민지 수탈을 기조로 하는 경제 정책에 의한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우리 민족은 많은 고통에 시달려왔다. 그리고 1차 세계 대전을 전후하여 세계사적으로 러시아 혁명이 발생하였고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의 제창이 있었다. 이런 국내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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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교육가이자 사업가. 이한기(李漢驥)[1894~1955]는 지금의 김천시 감문면 덕포동[현 감문면 곡송리]에서 태어났다. 1899년 1월 덕남서당(德南書堂)에서 수학한 뒤 1910년 3월 개령 개진학교를 졸업하였다. 1911년 3월 취성의숙 중학부 제2년을 수료하였다. 1912년 12월 조선총독부 토지조사국 기술원양성소, 1913년 12월 구국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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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김천공립보통학교 학생 임원성이 일본군 헌병 분대에 보낸 편지로 인해 일어난 사건. 1921년 2월 4일 김천공립보통학교[지금의 김천초등학교] 2학년생[당시 17세] 임원성이 ‘대한 독립 만세 일본 패망’이라고 쓴 글을 박문학이라는 가명으로 일본군 헌병 분대에 보냈다. 이 투서를 임원성의 아버지가 경영하는 대서소에서 사용하는 용지로 사용했기 때문에, 일본 경찰에 적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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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원성(林元星)은 1905년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김천공립보통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임원성은 아버지 임경한이 대서(代書)하면서 남긴 용지에 한문과 한글로 「조선 독립 만세 일본 패망」이란 격문을 작성하여 박문학(朴文學)이란 이름으로 김천 지역에 있던 일본군 헌병대에 우편으로 보냈다. 그러나 대서 용지의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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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종업(林鍾業)은 1907년 9월 8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군 김천읍 황금정 7번지[현 경상북도 김천시 황금동 7번지]에서 태어났다. 임업이(林業伊), 임기업(林基業), 임송춘(林松春)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임종업은 김천공립보통학교[현 김천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1923년 4월 서울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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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에서 신체를 단련하고 운동 능력을 기르는 일에 관련된 제반 활동. 인간의 신체 활동은 역사적으로 볼 때 음식물 획득과 종족 보존 등의 본능에서 출발되었다. 거친 자연환경 속에서 생존을 위한 자연과의 투쟁 과정에서 달리기와 던지기, 때리기 등의 신체 활동이 도구의 개발과 제작, 사용을 통해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으로 연결되어 체육이라는 개념으로 정립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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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김천 지역에서 기록된 체육 활동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700년 전 어느 여름날 감천에서 벌어진 감문국 군사들의 수영으로 볼 수 있다. 『동사(東史)』에 감문국 병사들이 반란을 일으킨 아포를 징벌하기 위해 감천을 건너다가 물이 너무 깊어 중간에서 헤엄쳐 돌아왔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이와 같이 중세 이전의 체육은 군사들의 신체 단련의 일환으로 전개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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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김천 지역에서 기록된 체육 활동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700년 전 어느 여름날 감천에서 벌어진 감문국 군사들의 수영으로 볼 수 있다. 『동사(東史)』에 감문국 병사들이 반란을 일으킨 아포를 징벌하기 위해 감천을 건너다가 물이 너무 깊어 중간에서 헤엄쳐 돌아왔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이와 같이 중세 이전의 체육은 군사들의 신체 단련의 일환으로 전개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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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에 있는 초등 보통 교육 기관. 1. 구한말 김천 지역에서 초등 교육이 시행된 시기는 구한말부터라고 볼 수 있다. 을사조약이후 ‘근대교육=국권회복’이라는 인식이 지방으로 확산되면서 군수, 계몽단체 회원, 상인 세력, 교회, 사찰 등 다수 세력에 의해 학교가 설립되었다. 구한말 김천 지역에 세워진 학교로는 송천학교[1901], 양성학교[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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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용수(崔龍洙)는 1865년 10월 12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남산동 174-15번지에서 태어났다. 김천 황금동교회 장로였던 최용수는 1919년 3월 9일 황금동교회에서 서울에서의 만세 시위를 경험하고 돌아온 같은 교회 조사(助師) 김충한과 대구 지역 만세 시위에 가담했다가 일본 경찰을 피해 김천으로 온 김수길 등과 만나 김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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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931년 4월 25일자에는 최송설당과 김천의 만남을 “적막(寂寞)의 김천을 활기(活氣)의 김천으로, 초야(草野)의 김천을 이상(理想)의 김천으로”라고 하였다. 또 『동아일보』 1939년 8월 17일자에는 최송설당의 “유업(遺業)은 천추(千秋)에 그 빛을 남길 것이고, 공덕(功德)과 방명(芳名)은 학교[김천고등보통학교, 현 김천중학교·김천고등학교]의 운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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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한명수(韓明洙)는 1893년 1월 1일 김천시 황금동 185-7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김천면 황금정교회(黃金町敎會) 소사로 있던 27세의 한명수는 평양, 서울 등지에서 3·1 운동을 목격한 같은 교회 조사 김충한(金忠漢)과 대구에서 3·8 만세 운동에 참여한 계성학교[현 계성고등학교] 학생 김수길(金秀吉), 같은 교회 장로 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