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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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조직되었던 민간 자치 담당 기구. 김천인민위원회는 1945년 9월 무렵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김천지방위원회가 변경되어 발족한 것이며 미군이 들어오기 전까지 김천 지역의 자치를 담당한 민간 기구이다. 1945년 9월 초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김천지방위원회가 김천인민위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김천인민위원회는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김천지방위원회 부위원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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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출신이거나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강화도 조약 이후 일제의 침략이 미국 등 열강들의 후원 속에 본격화되는 가운데 이에 맞선 우리 민족의 독립 운동 또한 격렬하게 전개되어 갔다. 위정척사 계열의 유생들은 상소 운동과 의병 항쟁으로, 개화 지식인들은 실력 양성을 위한 계몽 운동을 전개하면서 일제 침략에 맞섰다. 이명균, 김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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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경상북도 김천 지역의 국민보도연맹 가입자들이 집단 학살당한 사건. 국민보도연맹은 1949년 10월에 이승만 정부가 좌익 세력 척결을 위해 만든 단체로, 좌익의 사상 전환을 통해 생활을 보장한다는 미명하에 조직되었다. 이 연맹은 공산주의자는 물론 이에 가담했다가 형을 받았거나 기소 유예 처분을 받은 자와 자수한 사람 등을 가입시켜 사상을 전환시킬 목적으로 결성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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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지역을 포함하여 민족 해방과 계급 해방을 위하여 전개되었던 사회 운동. 3·1 운동 이후 민족 운동 상에서 나타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사회주의 사상이 대두하였다는 점이다. 일제 강점기 김천은 경상북도 지방에서 사회주의 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된 지역 중 한 곳이었으며, 대표적 공산주의자인 김단야(金丹冶)[본명은 김태연]와 황태성(黃泰成)[이명은 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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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병일(李秉一)은 1912년 7월 5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에서 태어났다. 이진갑(李進甲) 또는 목촌청(木村淸)으로도 불렸다. 1919년 3·1운동에 가담하여 일본 경찰에 검거되었다. 1928년 4월 서울 선린상업학교에 입학하여 재학하면서 서울의 조선철도주식회사에서 급사로 일했다. 1929년 7월 선린상업학교를 중퇴하고 조선철도주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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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종업(林鍾業)은 1907년 9월 8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군 김천읍 황금정 7번지[현 경상북도 김천시 황금동 7번지]에서 태어났다. 임업이(林業伊), 임기업(林基業), 임송춘(林松春)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임종업은 김천공립보통학교[현 김천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1923년 4월 서울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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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조직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산하 김천 지역 위원회. 조선건국준비위원회는 해방 전후 국가 건설 능력을 가진 한국인들이 자발적으로 근대 통일 민족 국가를 수립하기 위해 조직한 기구로, 일제가 태평양 전쟁에서 패배함으로써 조국 광복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상 아래 1945년 8월 14일 서울에서 여운형을 중심으로 건국을 준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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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4월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사회 운동을 목적으로 비밀 결사가 조직된 사건. 조선공산당 김천그룹 재건협의회는 1931년 2월 임종업(林鍾業), 조관제, 나정운, 백락도(白樂道) 등이 적색청년동맹, 적색노동조합, 적색농민조합 등을 조직하였으나 별다른 활동을 벌이지 못하고 좌절된 뒤 1933년 4월 이병일(李秉一), 백락도, 나정운 등이 김천 지역 사회 운동의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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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지역에서 활동했던 사회주의 운동가. 황태성(黃泰成)은 1906년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 청리리에서 태어났다. 황대용(黃大用)으로도 불렸다. 1930년대 초 김천에서 혁명적 비합법 조합인 적색노동조합과 농민 조합 결성에 힘쓴 사회주의 운동가 임종업(林鍾業)이 손위 처남이다. 황태성은 일제 강점기 선산의 박상희[박정희 전 대통령의 셋째 형], 김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