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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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활동했던 종교인·정치가. 광복 후 김천 지역에는 고덕환(高徳煥)을 중심으로 하는 고파(高派)와 심문(沈文)을 중심으로 하는 심파(沈派) 사이에 대립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두 파 간에 다툼이 있었는데,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고씨 파에서는 유교계 인사 김은배를 지원하고, 심씨 파에서는 기독교계 인사 권태희(權泰羲)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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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활동한 교육가이자 사업가. 김세영(金洗榮)[1920~2010]은 호는 세심(洗心)이며, 본관은 함녕(咸寧)이다.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태어났다. 1939년 김천중학교를 제4회로 졸업하였다. 평양 대동공업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강원도 태백시 소도동 소재 함태탄광을 경영하였다. 그 뒤 대한석탄협회 및 대한광업회 이사와 가야산업주식회사 및 근해상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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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부곡동 김천고등학교의 본관으로 사용되는 일제 강점기에 설립된 건물. 김천고등학교는 1931년에 최송설당(崔松雪堂)[1855~1939]이 민족정신 함양을 목적으로 설립한 인문계 사립학교이다. 개교 초기 건축된 붉은 벽돌로 지어진 본관 건물은 일제 강점기 ‘영남의 오아시스’로 상징될 정도로 유명했으며 1930년대 학교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 근대건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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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남서부에 위치한 시. 김천시는 경상북도 남서부 지역의 사회·문화·산업·행정·교통·관광의 중심지이며 동경 127°52′~128°18′, 북위 35°49′~36°15′에 위치해 있다. 동쪽으로 칠곡군·성주군, 서쪽으로 충청북도 영동군과 전라북도 무주군, 남쪽으로 경상남도 거창군, 북쪽으로 상주시·구미시와 접하고 있다. 김천시 동쪽에는 금오산(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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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삼락동에 있는 씨름 단체. 김천은 예로부터 씨름의 고장으로 알려져 왔는데 조선 중기 『동국세시기』에 “단오날이면 직지사에 수천 군중이 모인 가운데 씨름을 했다.” 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김천 씨름의 명성과 전통은 일제 강점기에도 이어져 1923년 제1회 대회를 시작으로 매년 추석 무렵이면 감천백사장에서 수만 군중이 모인 가운데 전국의 장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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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충한(金忠漢)은 1883년 10월 24일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비봉동 707번지에서 태어났다. 미국인 선교사 어드만(W.C. Erdman)의 전도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었다가 문중과 가정에서 쫓겨났던 김충한은 1906년 새로 건축한 비봉교회 초대 조사로 활동했으며, 이후 대구 계성학교를 다니던 중 목사가 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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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출신이거나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강화도 조약 이후 일제의 침략이 미국 등 열강들의 후원 속에 본격화되는 가운데 이에 맞선 우리 민족의 독립 운동 또한 격렬하게 전개되어 갔다. 위정척사 계열의 유생들은 상소 운동과 의병 항쟁으로, 개화 지식인들은 실력 양성을 위한 계몽 운동을 전개하면서 일제 침략에 맞섰다. 이명균, 김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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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태안(朴泰安)은 1898년 6월 14일 김천시 황금동에서 태어났다. 평양, 서울 등지에서 3·1 운동을 목격한 김천면 황금정교회(黃金町敎會) 소사(小舍) 김충한(金忠漢)과 대구에서 3·8 만세 운동에 참여한 계성학교[현 계성고등학교] 학생 김수길(金秀吉)은 황금정교회 장로 최용수(崔龍洙), 같은 교회 소사 한명수(韓明洙)와 함께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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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지역을 흔히 사통팔달의 교통 도시라고 한다. 김천 지역이 교통의 요지로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삼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한 시대 김천 지역에 자리 잡은 감문국은 개령면 일대를 중심으로 성주 일대의 가야, 상주의 사벌국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하지만 경주 지역을 근거로 하여 주변 소국을 차례로 정복하며 성장한 신라의 전신인 사로국에 의해 서기 23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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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시장은 ‘짐전장’ 또는 ‘큰장’으로 불리며 조선 후기부터 전국 5대 시장의 하나로 성장했다.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자 일본 사람들이 김천시장으로 몰려와 상설 점포를 열고 시장의 상권을 장악하였다. 그리하여 시장의 규모는 확대되었으나 한국인 영세 상인들은 큰장의 북쪽으로 밀려나 그곳에 ‘아랫장터’를 형성하고 장사를 하였다. 광복 후 상설 시장이 시내 여러 곳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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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시장은 ‘짐전장’ 또는 ‘큰장’으로 불리며 조선 후기부터 전국 5대 시장의 하나로 성장했다.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자 일본 사람들이 김천시장으로 몰려와 상설 점포를 열고 시장의 상권을 장악하였다. 그리하여 시장의 규모는 확대되었으나 한국인 영세 상인들은 큰장의 북쪽으로 밀려나 그곳에 ‘아랫장터’를 형성하고 장사를 하였다. 광복 후 상설 시장이 시내 여러 곳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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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 3·1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충량한 신민의 양성을 목표로 하는 지배 정책과 식민지 수탈을 기조로 하는 경제 정책에 의한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우리 민족은 많은 고통에 시달려왔다. 그리고 1차 세계 대전을 전후하여 세계사적으로 러시아 혁명이 발생하였고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의 제창이 있었다. 이런 국내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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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에서 재화와 용역이 거래되는 장소. 역사적으로 볼 때 시장이란 교환·거래가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장소를 뜻하였는데, 예부터 이를 장시(場市)·장(場)·장문(場門)이라고 불렀다. 생활에 필요한 잉여 물자를 서로 교환하는 풍습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명확하지는 않으나 주로 다른 상품이나 생산 조건이 다른 지역의 물품을 증여나 조공(朝貢) 등의 형식을 통해 교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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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이씨 집성촌인 원터마을은 조선 성종 때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일등공신 정양공(靖襄公) 이숙기(李淑琦)[1429~1489] 선생을 입향조로 모시고 있다. 이숙기 선생은 연성부원군 이말정의 아들로, 구성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용맹하며 큰 뜻을 품었던 이숙기 선생은 1453년(단종 1) 25세의 나이로 무과에 일등 급제하여 훈련원주부가 되었다. 1456년(세조 2)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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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상원(崔相元)은 1890년 3월 9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유성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서당에서 공부하다 1906년 선교사 부해리(傅海利)[본명 Henry Munro Bruen]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후 1906년 개교한 대구 계성학교의 첫 번째 졸업생이 되었다. 1912년 최상원은 모교인 계성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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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 독립운동가. 편덕렬(片德烈)의 집안은 원래 경상북도 김천을 본거지로 살아왔으나 할아버지 대에 황해도 연백으로 이주하였다. 1897년 황해도 연백군 봉서면 현죽리 목동에서 편상훈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편덕렬은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의병장이자 대한광복회와 의성단 등에서 독립 운동을 전개하던 편강렬의 아우이다. 경성에 있는 협성중학교를 졸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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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한명수(韓明洙)는 1893년 1월 1일 김천시 황금동 185-7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김천면 황금정교회(黃金町敎會) 소사로 있던 27세의 한명수는 평양, 서울 등지에서 3·1 운동을 목격한 같은 교회 조사 김충한(金忠漢)과 대구에서 3·8 만세 운동에 참여한 계성학교[현 계성고등학교] 학생 김수길(金秀吉), 같은 교회 장로 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