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남도 부여군 옥산면 상기리에 있는 비석. 가교비(架橋碑)는 다리를 놓은 뒤에 건립 과정을 기록하여 놓은 비석이다. 충청남도 부여군 옥산면 상기리에 있는 가교비는 비석 주위에는 다리가 확인되지 않아 ‘다리 없는 가교비’로 불린다. 비석 아래에 있는 넓은 바위가 고갯길을 이어 주는 돌다리이자 봇짐을 지고 고개를 넘는 나그네들의 쉼터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84년 5월 1...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일대에 있었던 백제 시대 행정 구역. 가림군(加林郡)은 백제가 6~7세기에 설치·운영한 37군(郡) 가운데 하나이다. 지금의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에 있는 가림성(加林城)[옛 이름 성흥산성(聖興山城)]이 가림군 중심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가 멸망한 뒤에 757년(경덕왕 16) 통일 신라의 경덕왕(景德王)이 ‘가림군(嘉林郡)’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가중리에 있는 원삼국 시대 생활 유적. 가중리 산29-23 유적(佳中里 山29-23 遺蹟)은 부여군 은산 우회 도로 건설 공사에 따른 구제 발굴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2004년 8월부터 2004년 12월까지 충청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청동기 시대 주거지 1기, 석개토광묘 3기, 원삼국 시대 주거지 13기가 확인되었다....
-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가중리, 은산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와 조선 시대의 복합 유적. 가중리 유적(佳中里 遺蹟)은 은산 우회 도로 건설 공사 때 확인된 유적으로,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가중리와 은산리에 있다. 충청문화재연구원에서 2004년 8월 15일부터 2004년 12월 31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 지점에 따라 가중리 가좌유적, 가중리 산직리유적으로 구분된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가증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군. 가증리 석관묘는 1915년 다리를 만들기 위하여 석재를 채취하던 중 발견되어 조사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7기의 돌널무덤[석관묘]이 조사되었다고 하는데, 도면 기록은 5기밖에 남아 있지 않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가탑리에 있는 백제 시대 생활 유적. 가탑리 유적(佳塔里 遺蹟)은 부여-논산 간 확·포장 공사가 실시되면서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가탑리에서 확인한 백제 시대 생활 유적이다. 가탑리 45-12번지 일원은 충청문화재연구원에 의하여 2000년 8월 31일부터 2001년 6월 26일까지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백제 시대 사비기의 수혈유구 22기, 고상건물 3동,...
-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가화리에 있는 백제 시대 고분군. 가화리 고분군은 충청남도 부여군의 남서쪽에 있는 낮은 구릉 사면에 조성된 가화리 유적과 가화리 샛터 유적 등의 백제 사비 시기 돌방무덤[석실묘] 고분군으로 나뉜다. 현재는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가화리와 양화면 족교리 경계에 있는 산성. 가회리 산성은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가화리에 있는 야산에 축조된 산성이다. 동남쪽은 금강이 조망되고, 남벽은 일부 석축 흔적이 남아 있다. 성 내부는 장대와 건물터 흔적이 있다. 내부에서 회청색토기와 회백색 와질토기가 출토되었다....
-
충청남도 부여군 의열사와 삼충사에서 제향하고 있는 백제 말기의 충신. 계백(階伯)[?~660]은 조선 후기 김정호(金正浩)가 편찬한 『대동지지(大東地志)』에 “이름은 승(升)이고 성씨는 백제 왕실의 성씨와 같았다”라는 기록이 있어 ‘계백’을 성씨로 보기도 한다. 계백의 조상은 개백현(皆伯縣)[현 경기도 고양시]을 근거로 삼았다. 『삼국유사(三國遺事)』「기이(紀異)」 태종춘추공(太宗...
-
충청남도 부여 지역 금강 변에 있었던 조선 시대의 나루. 고다진(古多津)은 조선 시대 임천군(林川郡)과 석성현(石城縣) 사이 금강 변에 있는 강 나루[진도(津渡)]이다. 위치는 임천군에서 동쪽으로 29리[약 11.39㎞], 석성현에서는 서쪽으로 10리[약 3.93㎞]에 있었으며, 임천군과 석성현을 잇는 교통로 상에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수세가 매우 험하...
-
초기 국가 시대부터 남북국 시대까지 부여 지역의 역사와 문화. 부여 지역에는 마한의 소국인 고포국(古蒲國)이 있었던 것으로 비정된다. 원삼국 시대 유적으로는 증산리 유적에서 주구묘 14기가 확인되었으며, 가중리 유적에서 7기의 주거지가 조사되었다. 쌍북리 두시럭골 유적에서는 덧널무덤과 원형 수혈유구들이 조사되었고, 가탑리 유적에서는 널무덤과 독무덤이 조사되었다. 가탑리 가탑들 유적...
-
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 왕조 시기 충청남도 부여 지역의 역사와 문화. 부여 지역은 사실상 후삼국 통일과 함께 고려에 편입되었다. 고려는 지금의 부여 지역을 부여·임천·홍산·석성 등 4개의 군현으로 나누어 통치하였다. 부여와 석성[현 부여군 석성면]은 이때 공주에 예속되어 있었고, 임천은 홍산[현 부여군 홍산면]과 함께 충청남도 서천 일대를 예속하면서 오늘날 부여 지역의 거...
-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 분포하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형식 중의 하나로, 지상에 드러난 커다란 덮개돌과 덮개돌 밑의 받침돌, 지표면의 묘역 시설, 지하의 무덤방 등의 하부 시설로 구성되어 있다. 고인돌은 덮개돌과 하부 구조의 유무 및 형태에 따라서 탁자식 고인돌, 바둑판식 고인돌, 덮개식 고인돌로 구분된다....
-
삼한 시대 마한 지역에 있다가 백제에 병합된 것으로 추정되는 소국. 중국의 역사서 『삼국지(三國志)』의 권30 위서(魏書) 오환선비동이전(烏丸鮮卑東夷傳) 한(韓) 조에 적힌 마한(馬韓) 50여 개 소국(小國) 이름 가운데 하나로서, 26번째에 적혀 있다. 고포국(古蒲國)은 나라의 위치, 규모, 존속 시기 등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고 단지 이름만 전하므로 구체적인 사항은 알 수 없다...
-
충청남도 부여군에 있는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설치된 성곽. 충청남도 부여군 일대에서는 부여 부소산성과 부여 나성[외곽성]을 포함한 30여 개의 산성들이 산재하여 있다. 산성들은 대부분 낮은 구릉의 정상에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축조 시기를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부여 지역의 역사·지리적인 관점에서 볼 때 대부분 백제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백제의 성왕은 53...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왕족. 교기(翹岐)[?~?]는 백제 제31대 의자왕 동생의 아들로 추정되기도 하고, 『일본서기(日本書紀)』에 643년(의자왕 3) 4월 “백제국주의 자식 교기와 아우 왕자가 조문사와 함께 일본에 왔다”라고 기록된 부분을 근거로 의자왕의 아들로 추정되기도 한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구교리에 있는 백제 시대 절터. 백마강에 인접하여 있는 절터로, 일제 강점기 후지사와 가즈오[藤澤一夫]에 의하여 조사되었다고 전하나,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이후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규모나 구조를 알 수 없으며, 확인된 자료를 바탕으로 사지로 추정하고 있다....
-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태양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군. 구룡 태양리 고인돌군(九龍 太陽里 고인돌群)은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태양1리와 태양2리를 연결하는 소로에 의하여 산자락이 잘린 속칭 ‘쟁재고개’ 위, 해발 30~40m 구릉 정상부에 있다....
-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구봉리 및 규암면 노화리에 있던 청동기 시대, 백제 시대, 조선 시대의 생활 유적. 부여 구봉·노화리 유적(九鳳·蘆花里 遺蹟)은 구룡-부여 간 도로 확장 및 포장 공사에 따른 발굴 조사에서 확인된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의 생활 유적이다.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에서 2000년부터 2002년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청동기 시대와 백제 시대 그리...
-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구봉리에 있는 테뫼식 산성. 구봉산성은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구봉리에 있는 구봉산 정상을 중심으로 축조된 토축산성이다. 평야 지대에 발달한 구릉을 이용하였으며, 남쪽으로 넓은 구룡평야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관방 요처로 활용되었을 것이다. ‘독산성(禿山城)’이라고도 한다....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관리. 국지모(國智牟)[?~?]는 백제 대성팔족(大姓八族)의 하나인 국씨 가문이다. 국씨는 국지모 이외에도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에 국변성(國辯成), 『일본서기(日本書紀)』에 국사리(國沙利), 덕솔 국수다(國雖多), 국변성 등이 확인된다. 국변성이 의자왕이 당나라로 갈 때 대좌평 사택천복 등과 함께 끌려갔다는 기록에서...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군수리에 있는 백제 시대 생활 유적. 군수리(軍守里) 375-1 유적은 국도 제4호선 확포장 공사 과정에서 확인된 백제 시대 생활 유적이다. 2001년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에 의하여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백제 시대 동서 방향 도로 유구, 수혈주거지 2기, 굴립주건물지 6기, 벽주건물지 2기가 확인되었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창고 터. 군창지는 1915년 우연한 기회에 불에 탄 곡물이 발견되면서 백제 멸망 유적이라는 인식 하에 백제 유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1981년과 1982년 2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를 실시한 결과, 조선 시대 창고 건물이었음이 밝혀지게 되었다. 군창지는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0...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무신. 권이길(權頥吉)[1588~1627]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자순(子順)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권용(權鎔)이고, 할아버지는 권대훈(權大勲)이다.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권곤(權鵾)이고, 어머니는 민영(閔韺)의 딸 여흥 민씨(驪興 閔氏)이다. 부인은 선전관 임정문(林挺門)의 딸 예천 임씨(醴泉 林氏)이고, 아들은 권희(權曦)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정동리에 정려각이 있는 조선 후기의 열녀. 권이길(權頥吉) 처 예천 임씨(醴泉 林氏)[1594~1672]는 선전관을 지낸 임정문(林挺門)의 딸이자 판관 임계형(林繼亨)의 증손녀이다. 남편 권이길[1588~1627]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동지중추부사 권곤(權鵾)의 아들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나복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 규암 나복리 고인돌은 부여종합운동장에서 반산저수지 방향으로 600m 정도 떨어져 있는 국도변에 있다....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함양리에 있는 조선 전기 공주의 태실. 규암 의혜공주 태실(窺岩 懿惠公主 胎室)은 조선 시대 중종(中宗)의 둘째 딸이자 문정왕후(文定王后) 윤씨의 딸 의혜공주(懿惠公主)의 태실(胎室)이다. 태실은 왕실에서 출산이 있을 때 출생아의 탯줄을 봉안하고 표석을 세운 곳을 말한다. 규암 의혜공주 태실은 1941년 청농정이라는 정자를 짓기 위하여 터를 다지던 중 발견되...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함양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함양리 마을 입구 정자나무 옆 평지에 2기의 고인돌이 있다....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 일대에서 확인된 백제 시대 생활 유적 및 방어 유적. 규암리 산13-1 유적은 부여-청양 간 지방 도로 확포장 공사 구간에서 확인된 백제 시대 생활 유적이자 방어 유적이다. 대전보건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2차례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대상지는 총 Ⅰ~Ⅴ구간으로 구분되며, 1999년 12월부터 2000년 5월까지 Ⅰ~Ⅱ지구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산성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하는 백제 시대 금동 삼존상. 금동정지원명석가여래삼존상은 1919년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산성의 송월대(送月臺)[현재의 사비루(泗沘樓)] 부근에서 발견되었다고 전해지는 백제 시대 금동 불상이다. 배[舟] 형태의 커다란 광배를 배경으로 본존 불상과 좌우 협시 보살상이 배치되는 일광삼존상(一光三尊像)이다. 광배 뒤에 명문이 있으며...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지역에 있었던 고려 시대의 특수 행정 구역. 고려 시대에는 일반적인 행정 구역인 군현과 함께 지방의 특수한 행정 구역인 향·부곡·소와 장(莊)·처(處)가 있었는데, 장·처는 고려 말까지 존속되다가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 대부분 폐지되거나 일반 군현에 흡수되었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금성산 조왕사에 있는 고려 시대 석불. 금성산석불좌상(錦城山石佛坐像)은 충청남도 부여군 금성산 남쪽 기슭의 옛 절터에 묻혀 있었던 것을 수습한 것이다. 치병과 득남에 영험한 것으로 전해져 민간에서 숭배되었으며, 현재는 조왕사(朝王寺) 불당의 주불(主佛)로 예배되고 있다. 금성산석불좌상은 전체 높이 127㎝, 대좌 높이 96㎝의 화강암제 좌상이다. 두...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 금성산성(錦城山城)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금성산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이다. 부여 지역 중심부의 동쪽에 있으면서 왕도 중심부의 동남방 방어의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금성산성은 부소산성에 버금가는 위용을 지니는 성이다. 금성산성의 축성 시기는 분명하지 않지만, 사비 천도 이후에 축조되었다면 왕궁 및 왕도 방비를 위하여...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금암리에 있는 고려 시대 오층석탑. 금암리오층석탑(金岩里五層石塔)은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금암리 금새마을에 있다. 금새마을은 ‘금사(金寺)’라는 절 이름에서 딴 것이다. 집터를 다지던 중 탑의 석재 일부와 금동으로 만든 불상의 일부가 함께 발견되어 일대가 절터였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금암리오층석탑은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88호로 지정...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중정리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 김거익의 조선 전기 묘. 김거익의묘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중정리에 조성된 김거익(金居翼)의 묘이다. 김거익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의성(義城), 호는 퇴암(退庵)이고 고려 때 좌복야(左僕射)를 지냈다. 의성군(義城郡)에 봉해진 김용비(金龍庇)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김태권(金台權)이고, 형은 공조전서(工曹典書)를 지낸 김...
-
조선 후기 부여 지역에 거주한 문신. 김광악(金光岳)[1694~1759]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동첨(東瞻) 또는 수이(秀而), 호는 독좌와(獨坐窩)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병조의 낭관을 지낸 김시현(金時鉉)이고, 할아버지는 김빈(金彬)이다. 아버지는 김정상(金鼎相)이고, 어머니는 부사 이적(李菂)의 딸 전주 이씨(全州 李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조영걸(趙英傑)의 딸이고,...
-
조선 전기 부여 지역에 은거하였던 문인. 김시습(金時習)[1435~1493]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청한자(淸寒子)·동봉(東峰)·벽산청은(碧山淸隱)·췌세옹(贅世翁)이며, 법호는 설잠(雪岑)이다. 아버지는 김일성(金日省)이고, 어머니는 선산 장씨(仙槎 張氏)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무량사에 있었던 조선 전기 문신 김시습 초상화. 김시습 초상은 김시습(金時習)[1435~1493]의 초상화로 제작 시기를 알 수 없지만, 조선 전기에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김시습의 본관은 강릉(江陵)이고,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이다. 사육신(死六臣)이 사형을 집행 당한 이후에 백성들이 세조를 두려워하여서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였는데, 김시습이 밤에...
-
조선 후기의 부여 출신의 효자. 김운신(金運新)[?~?]은 부여 출신의 효자로 이름났으나 자세한 행적은 전하지 않는다....
-
조선 전기 부여 출신의 효자. 김원손(金元孫)[?~?]은 부여 홍산[현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출신의 수군(水軍)으로. 부모가 살아 있을 때는 정성을 다해 봉양하였고, 부모가 사망한 뒤에는 사당을 지어 모든 제사를 예법에 따라 거행하였다고 한다....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무신. 김중환(金重煥)[?~?]은 부여 출신으로 1766년(영조 42)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1772년(영조 48) 12월과 1774년(영조 50) 6월 수문장에 제수되었다....
-
조선 후기 부여현감을 역임한 문신. 김집(金集)[1574~1656]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사강(士剛), 호는 신독재(愼獨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호(金鎬)이고, 할아버지는 대사헌을 지낸 김계휘(金繼輝)이다. 아버지는 김장생(金長生)이고, 어머니는 조대건(曺大乾)의 딸 창녕 조씨(昌寧 曺氏)이다. 첫 번쩨 부인은 유홍(兪泓)의 딸 기계 유씨(杞溪 俞氏)이며, 두 번쩨 부...
-
조선 후기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에 수북정을 짓고 은거한 문신. 김흥국(金興國)[1557~1623]의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자는 경인(景仁), 호는 수북정(水北停)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병조참판 김약평(金若枰)이고, 할아버지는 김희려(金希呂)이다. 아버지는 사포서별좌 김응손(金膺孫)이고, 어머니는 정랑 이숙간(李叔幹)의 딸 용인 이씨(龍仁 李氏)이고, 부인은 백성 이씨(栢...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나복리에 있는 삼국 시대부터 통일 신라 시대까지의 분묘 유적. 나복리 건지말 유적은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나복리에 있다. 부여 백제호 관광단지 주변 도로 공사 과정에서 확인된 분묘 유적이다. 2009년 한국고고환경연구소의 발굴 조사 결과 백제 시대의 돌방무덤 3기, 통일 신라 시대의 돌방무덤 21기, 고려 시대의 주거지 20기, 조선 시대의 수혈 7기, 토...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나복리에 있는 백제 시대 고분군. 충청남도 부여군의 서쪽에 있는 구릉 사면에 나복리 고분군, 나복리 월구리 고분군, 나복리 건지말 유적, 그리고 나복리 유적 등 백제 사비 시기 돌방무덤 고분군이 조성되어 있다. 나복리 고분군은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나복리 산21, 나복리 월구리 고분군은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나복리 월구리 일원, 나복리 건지말 유적은 충청...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나복리에 있던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복합 유적. 나복리 유적은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나복리 부여 종합 체육 시설 건립 부지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2002년 충남발전연구원에 의하여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청동기 시대 주거지 22기, 무덤 11기, 초기 철기 시대 주거지 1기, 삼국 시대 고분 8기, 통일 신라 시대 토광묘 1기, 고려 시대 고분...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나복리에 있는 산성. 나복리성은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나복리에 있는 산성이다. 1998년 간행된 『문화유적분포지도』에는 산성이 표시된 지점이 ‘부여 나복리 유물산포지 2’로 표기되어 있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부소산에 있는 바위. 낙화암(落花岩)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부소산에 있다. 660년 7월 백제는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의 공격을 받고 왕도 사비성(泗沘城)이 함락되고 백제가 멸망할 위기에 처하였다. 백제 왕궁에 있던 궁녀들은 적군에 항복하기보다 죽기로 마음먹고 부소산성의 북쪽 강변 바위에서 차례로 떨어져 죽었다는 설화가 전한다. 후대에 궁녀들...
-
충청남도 부여군 남면 내곡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군. 남면 내곡리 고인돌(南面 內谷里 고인돌)은 충청남도 부여군 남면에서 홍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국도변 참실마을 입구 표지석 인근 비닐하우스 뒤편 구릉 사면 말단부에 있다....
-
충청남도 부여군 남면 송암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군. 충청남도 부여군 남면 송암리 호암마을 버스 정류장 동쪽으로 약 30~40m 떨어진 작은 구릉 평탄면에 있다....
-
충청남도 부여군 남면 대선리와 홍산면 남촌리 사이에 있는 조선 후기의 비석. 남면 신교비(南面 薪橋碑)는 충청남도 부여군 남면과 홍산면 사이의 삽교 입구에 있는 비석이다. 『여지도서』에는 홍산면에서 남면으로 이어지는 곳에 신교(薪橋)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섶다리’ 혹은 ‘삽다리’라고 불렀다. 남면 신교비는 다리의 건립과 관련하여 세워진 비석으로 ‘삽다리비’라고도 한다. 2...
-
삼국 시대 538년부터 660년까지 사용된 백제의 별칭. 백제 성왕은 538년(성왕 16) 백제의 중흥을 위해 사비(泗沘)로 천도하면서 나라 이름을 ‘남부여(南扶餘)’로 하였다. 남부여로의 개칭은 부여를 계승한다는 정체성을 천명한 것으로, 왕실 세력을 결집하고 이성 귀족과 차별화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
-
충청남도 부여군의 남양 전씨 문중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 시대 고문서. 남양 전씨 종중 문서 일괄(南陽 田氏 宗中 文書 一括)은 남양 전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27건의 문서를 일컫는다. 관직 임명장에 해당하는 ‘고신(告身)’은 23건, ‘유서’는 1건, ‘호적 단자’는 3건이다. 1981년 7월 15일 보물 제72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남촌리에 있는 조선 시대 산성. 남촌리 산성은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남촌리에 있는 산정식 산성이다. 부여 홍산현 관아의 남쪽에 있는 해발 35m 저구릉성 산지에 있으며, 홍산 고읍성으로 추정된다....
-
충청남도 부여군 내산면 온해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윤집의 묘와 신도비. 윤집(尹集)[1606~1637]은 1631년(인조 9)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수찬, 사헌부헌납, 이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윤집은 자가 성백(成伯), 호는 임계(林溪), 고산(高山)이며, 본관은 남원이다. 1636년 교리로 있을 때 병자호란이 발발하여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였을 때 최명길 등이 화의를 주장하자...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석목리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노은사지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4호인 부여석목리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있는 고려 시대 절터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노화리에 있는 산성. 노화리 독성은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노화리에 있다고 알려진 테뫼식 산성이다. 노화리 독성이 있다고 알려진 곳은 완만한 사면을 띠는 높이 82m의 야산이다. 야산 정상부에는 민묘가 있다. 구봉산성이 있는 구봉산 산줄기의 북동쪽 봉우리 부분에 해당한다....
-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논티리에 있는 마한 시대 제사 유적. 논티리 유적은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논티리에 있는 마한 시대의 제사 유적이다. 백제 시대 논티산성에서 발굴 조사된 유적으로 주변 경관을 조망하기에 용이하다. 구룡 우회 도로 건설 공사 중에 토기 등 유물이 노출되면서 1999년 국립부여박물관이 발굴 조사를 진행하였다. 논치유적이라고도 한다....
-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논티리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 논티산성은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논티리에 있다. 서해안 서천 지방으로 통하는 길목을 지키기 위하여 조성된 테뫼식 산성이다. 산성 내에서 조사된 논티리 제사 유적의 존재는 1999년 구룡 우회 도로 공사 과정에서 다량의 유물이 확인되어 긴급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확인되었다. 본래 논티리 유적은 삼국 시대 백제의 산성으로만...
-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현미리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 누르개재 산성은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현미리 산2-1번지 일원에 있다. 현미리와 임천면 가신리, 양화면 초왕리에 걸쳐 있는 높이 223m의 무제산에서 남쪽으로 길게 뻗은 산 능선에 ‘누르개재’라는 이름의 고개가 있다. 누르개재 산성은 누르개재의 북쪽에 있는 높이 190m의 산 능선 정상부에 있다....
-
충청남도 부여군 옥산면 대덕리에 있는 원삼국 시대부터 백제 시대의 분묘 유적. 대덕리 대마동 유적(大德里 大馬洞 遺蹟)은 홍산-구룡 간 도로 확포장 공사에 따른 구제 발굴 조사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조사 결과 원삼국 시대 주구토광묘 2기, 백제 시대 돌방무덤 5기, 시대 미상 토광묘 20기가 확인되었다. 대덕리 대마동 유적이 있는 옥산면은 행정구역상 부여군에 속하지만, 원삼국 시대...
-
백제 시대 당나라에서 제30대 무왕과 제31대 의자왕, 부여융과 부여경에게 내린 명예직 벼슬. 대방군은 후한(後漢) 말 건안(建安) 연간[196~220]에 요동 지역의 패권자인 공손강(公孫康)이 낙랑군(樂浪郡)의 둔유현(屯有縣)을 비롯한 남쪽 7개 현을 따로 떼어내 설치하였던 이른바 외군(外郡)이다. 중심지인 대방현(帶方縣)의 관청이 지금의 황해도 봉산군 문정면에 있는 당토성(唐土...
-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일대에 설치된 백제 시대 행정 지명.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6 지리지3에 따르면 웅주(熊州)에 속한 가림군(嘉林郡)에는 2개의 현(縣)이 소속되어 있었는데, 그중 하나인 “한산현(翰山縣)은 본래 백제 대산현(大山縣)이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라고 한다. 고려 시대에는 한산현을 홍산현(鴻山縣)으로 불렀다. 대(大)·한(翰)·홍(鴻)은 모두 ‘크다’는 뜻...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구교리 대조사에 있는 고려 시대 석탑. 대조사석탑(大鳥寺石塔)은 고려 시대 석탑으로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구교리 대조사에 있다. 대조사석탑은 지붕돌만 남아 있었는데, 1975년 탑신 일부를 찾아 다시 세웠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9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두곡리 대흥산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 대흥산성(大興山城)은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두곡리 대흥산 정상부에 있는 테뫼식 토축산성이다. 부분적으로 성벽의 흔적이 보이나 숲이 우거져 있어 성의 윤곽을 알아보기는 어렵다. 부여 가림성과 함께 방어성의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 백제부흥운동을 주도한 승려 출신의 장군. 도침(道琛)[?~661 또는 662]의 출신이나 가계는 분명하지 않다. 사망 시기는 661년 또는 662년으로 추정된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군. 동남리 석관묘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남쪽의 궁남지와 화지산 사이 평탄지에 있었다. 돌널무덤[석관묘]이 확인된 지점은 북쪽의 화지산에서 뻗어 내려온 남향 사면 말단부 평탄지에 해당한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서 확인된 백제 시대 생활 유적. 동남리 유적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701번지와 259-12번지 저구릉성 평탄 대지에서 확인된 백제 시대 생활 유적이다. 동남리 701번지 유적은 사업 시행자 김남수의 단독 주택 및 근린 생활 시설 신축 부지 유적이다. 2013년 4월 3일부터 4월 5일까지 조사가 실시되어 수혈유구가 3기 확인되었다. 동남리...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백제 시대 절터. 동남리사지는 백제 시대의 폐사지로, 탑지가 확인되지 않은 특이한 가람 배치를 보이고 있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국립부여박물관에 있는 고려 후기 석탑. 동남리석탑(東南里石塔)은 고려 시대 석탑으로 국립부여박물관에 있다. 원래 부여읍 석목리 논절 부락의 고려 시대 옛 절터에 있던 것을 국립부여박물관으로 옮겨 세웠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0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금성산에 있는 백제 시대 절터로 추정되는 건물 터. 동남리전천왕사지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금성산의 서남쪽 기슭에 있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국립부여박물관에 있는 고려 전기 석탑. 동사리석탑(東寺里石塔)은 고려 시대 석탑으로 국립부여박물관에 있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2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변경되었다....
-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만지리와 임천면 군사리 경계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 만지산성(晩止山城)은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만지리와 임천면 군사리 경계의 산 정상부에 있는 테뫼식 산성이다. 부여 가림성과 함께 사비성의 남쪽 방어를 담당하였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백제 시대 건물 터.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에는 의자왕이 655년 2월에 궁궐 남쪽에 망해정을 건립[立望海亭於王宮南]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조선 후기 순암 안정복이 고조선에서부터 고려 말까지의 역사를 다루어 편찬한 역사책인 『동사강목(東史綱目)』에는 백제 왕이 망해루에서 군신들과 연회를 하였다는 기록이 확인된다. 백제 후기 왕도였...
-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발견된 글을 적은 나뭇조각에 나타난 고대 부여인의 삶.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백제 목간은 2023년 현재 16개 유적에서 102점 125편이 출토되었다. 이는 전체 백제 목간의 거의 95%를 차지한다. 목간은 단편적 내용을 기록하여 정보량이 많지 않지만, 당대인이 기록한 자료로 『삼국사기(三國史記)』나 『삼국유사(三國遺事)』 같은 문헌에서는 전하지 않는 상세한 당...
-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무량사에 있는 조선 후기 삼장보살 탱화. 무량사 극락전 삼장보살탱(無量寺 極樂殿 三藏菩薩幀)은 화기(畵記)에 따르면 “건륭 12년[1747년] 4월 왕, 왕비, 세자의 만수무강을 위하여 무량사에서 제작한 삼장탱”이다. 상단에 결가부좌한 천장보살(天藏菩薩), 지지보살(持地菩薩), 지장보살(地藏菩薩)을 그리고, 주위를 여러 무리들이 에워싸는 형태로 묘사하...
-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무량사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의 걸개용 미륵불 입상 불화. 모시 바탕에 보살 형태의 미륵불을 단독으로 크게 묘사한 가로 404㎝, 세로 656㎝의 걸개 그림[괘불탱(掛佛幀)]이다. 그림 속 미륵불은 머리에 관을 쓰고 연꽃을 들고 서 있는데, 이런 보관불(寶冠佛) 입상은 17세기~18세기 석가모니불과 노사나불의 괘불탱에도 등장한다. 부여 무량사 괘불...
-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에 있는 무량사의 옛 절터. 무량사는 신라 시대 범일국사[810~889]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사찰 구조 등으로 미루어 고려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인조 때 재건하였다. 무량사는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살해한 뒤 임금이 된 것을 비판하며 평생을 은둔한 매월당 김시습이 불교에 입문하여 말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난...
-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무량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불화. 무량사극락전후불탱(無量寺極樂殿後佛幀)은 3폭의 삼베에 각각 아미타여래·관음보살·대세지보살 등을 연한 채색으로 그려 족자로 만든 것이며, 부여 무량사 극락전의 소조 삼존상 후벽(後壁)에 걸려 있다. 3폭 모두 족자의 길이가 8m에 육박하며, 현존하는 실내 봉안 불화 가운데 가장 크다. 1747년에 제작된 부여 무량사 극락...
-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무량사에 있는 조선 전기 김시습의 사리를 봉안한 승탑. 무량사김시습부도(無量寺金時習浮屠)는 조선 전기 문인이었던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의 사리를 봉안한 승탑이다. 무량사김시습부도는 1973년 12월 26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
-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무량사에 있는 고려 전기의 당간지주.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것으로, 절에서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마다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 두었다. 이때 깃발을 걸어 두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당간의 양쪽에 지탱하여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무량사당간지주(無量寺幢竿支柱)는 고려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1976년 1월 8일 충청남...
-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무량사에 있는 조선 후기 동종. 무량사동종(無量寺銅鐘)은 조선 인조 시기에 이루어진 부여의 무량사 중창 당시에 제작되었으며, 현재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무량사 극락전에 안치되어 있다. 밀납법으로 주석과 청동을 사용하여 주조하였으며, 몸체 하단에 명나라 숭정 9년인 1636년(인조 14) 5월에 무량사 대종(大鐘)이 완성되었음을 밝히고, 후원자...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에서 출토된 불상 및 보살상, 사리구 등의 일괄 유물. 1971년 부여 무량사 극락전 앞에 있는 고려 시대 석탑인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의 해체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5층 몸돌에서 돌로 만든 함이 나왔는데, 함 안에는 수정과 청동으로 만든 사리병을 담은 원형의 청동 사리함이 두 겹으로 포개진 상태로 안치되어 있었다. 2층 몸돌에서는 고려 시대 금동...
-
삼국 시대 백제의 제30대 왕. 무왕(武王)[?~641]의 성은 부여(扶餘)이며, 이름은 부여장(扶餘璋)이다. 백제 제29대 왕인 법왕(法王)[재위 599~600]의 아들이며, 제30대 의자왕(義慈王)[재위 641~660]의 아버지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금마(金馬)[현 전라북도 익산시]의 연못에 사는 용과 가난한 어머니 사이에서 무왕이 태어났으며, 마를 캐어 생계를 유지...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나복리에 있는 산성. 미녀봉산성은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나복리와 은산면 가중리 경계에 있는 높이 150m의 미녀봉 정상부에 있다. 미녀봉 정상부는 주변 지역을 모두 조망할 수 있는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
백제 시대 음악가이자 무용가. 미마지(味摩之)[?~?]는 중국 오나라에서 기악무(伎樂舞)를 배우고 돌아온 뒤 612년(무왕 13) 일본으로 건너가 기악무를 전수한 백제 무왕 때의 음악가이자 무용가이다. 미마지는 티베트어로 ‘고승(高僧)’ 또는 ‘예능인’를 의미하는데 백제에서 온 예능이 능하였던 승려를 ‘미마지’라고 칭하였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
조선 전기 부여 지역에 거주한 문신. 민기문(閔起文)[1511~1574]의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자는 숙도(叔道), 호는 역암(櫟庵)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민해(閔解)이고, 할아버지는 충청도관찰사 민사건(閔師騫)이다. 아버지는 우부승지 민원(閔㥳)이고, 어머니는 사직서영 정숙돈(鄭叔潡)의 딸 봉화 정씨(奉化 鄭氏)이다. 부인은 최흡(崔潝)의 딸 경주 최씨(慶州 崔氏)이고, 아들은...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신. 민성휘(閔聖徽)[1582~1647]의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초명은 민성징(閔聖徵), 자는 사상(士尙, 士祥), 호는 용졸당(用拙堂)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승지 민기문(閔起文)이고, 할아버지는 민이(閔涖)이다. 아버지는 호조정랑 민유부(閔有孚)이고, 어머니는 정척(鄭惕)의 딸 해주 정씨(海州 鄭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이의정(李義貞)의 딸 전주 이씨...
-
조선 후기 부여 지역에서 발생한 이몽학의 난 진압에 공을 세운 무신. 민여준(閔汝俊)[1539~1599]의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자는 영백(英伯)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민구손(閔龜孫)이고, 할아버지는 좌찬성 민제인(閔齊仁)이다. 아버지는 문천군수를 지낸 민사용(閔思容)이고, 어머니는 광주 김씨(光州 金氏)이다. 부인은 충의위 이경종(李景宗)의 딸 전주 이씨(全州 李氏)이고, 아들...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모리 여흥 민씨 입암집 장판각에 소장되어 있는 입암 민제인의 시문집을 새긴 조선 후기 목판. 민제인(閔齊仁)은 자는 희중(希仲), 호는 입암(立巖)이며,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1520년(중종 15)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부제학, 사간원 대사간, 사헌부 대사헌, 평안도 관찰사, 형조판서, 병조판서, 의정부 우찬성 등을 역임하였다. 명종 초 을사사화가 발생...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효자. 민진익(閔鎭翼)[1661~1731]의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자는 덕좌(德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민구(閔構)이고, 할아버지는 사섬시직장 민광윤(閔光尹)이다. 아버지는 민명중(閔明重)이고, 어머니는 풍양 조씨(豐壤 趙氏)이다. 부인은 전주 이씨(全州 李氏)이고, 아들은 민이수(閔頤洙)·민항수(閔恒洙)·민정수(閔鼎洙)이다....
-
조선 전기 부여 지역에서 발생한 이몽학의 난을 진압한 무신. 박명현(朴名賢)[1561~1608]의 본관은 죽산(竹山)이며, 자는 군빙(君聘)이다. 아버지는 박근(朴近)이고, 형은 박영현(朴英賢)·박제현(朴濟賢) 등이다. 박명현(朴命賢)으로 알려지기도 하였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국립부여박물관에 있는 고려 시대 석불. 박물관석조여래입상은 1933년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금성산의 천왕사 절터에서 발견된 높이 285㎝의 석불상인데, 2023년 현재 국립부여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서 있다. 머리가 몸체에 비하여 지나치게 커 얼굴 폭이 두 어깨 폭과 거의 비슷할 정도이다. 어깨 아래는 몸의 윤곽선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마치 돌...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국립부여박물관에 있는 고려 시대 석탑. 박물관석탑(博物館石塔)은 고려 시대 석탑으로 국립부여박물관에 세워져 있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0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변경되었다....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효자. 박용급(朴用汲)[?~?]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석성현[현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출신의 효자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구체적인 행적은 전하지 않는다....
-
조선 전기 부여 지역의 열녀. 경주 이씨(慶州 李氏)[?~?]의 남편은 의흥위(義興衛)의 갑사(甲士)를 지낸 박원형(朴元亨)이다. 박원형의 처 경주 이씨는 부여에 살며 평소 남편을 지극히 섬겼는데, 어느 날 남편이 심한 병에 걸리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약에 타서 먹여 낫게 하였다고 한다. 경주 이씨의 행적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의병. 박혼(朴渾)[?~1592]은 부여 출신이며, 자는 호연(浩然)이다. 조헌(趙憲)[1544~1592]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집안 대대로 유학을 숭상하여 글을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한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스승 조헌이 의병을 일으키자 박혼은 의진에 가담하였다....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반산리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 반산성은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반산리 소반뫼 정상에 있는 테뫼식 토축산성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정동리에 있는 백제 시대 절터. 밤골 사지(밤골 寺址)는 절 이름이나 그 유래가 전하여지지 않은 유적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 있는 절터 공방지에서 출토된 백제 시대의 금동제 향로. 사비도성의 외곽인 부여 나성과 부여 왕릉원 사이에 있는 능사인 부여 능산리 사지에 대하여 1993년에 실시된 제2차 발굴 조사 중 공방지에서 출토된 금동제 향로이다. 높이 61.8㎝, 몸통 최대 지름 19㎝, 무게 11.85㎏의 대형 향로로 백제를 대표하는 유물 중 하나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과 공주시에서 백제를 주제로 매년 개최하는 역사 문화 축제. 백제문화제는 백제 부흥의 염원을 담은 대표적인 지역 축제이다. 백제문화제는 백제 망국의 원혼을 위로하는 제의에서 비롯되었다. 1955년 4월 18일 부여 지역의 유지들이 뜻을 모아 ‘백제대제집행위원회’를 구성하여 ‘백제대제’를 거행한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부여 지역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 부소산성...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백제 오천결사대의 넋을 위령하기 위하여 세운 기념탑. 백제 오천결사대 충혼탑(百濟 五千決死隊 忠魂塔)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의 궁남지 인근에 있는 기념탑이다. 나당 연합군의 협공을 받고 백제의 운명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였을 때 황산벌로 나가 신라군과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장군 계백과 백제 오천결사대의 우국충절을 기리고 넋을 위로하...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부여 능산리 사지에서 출토된 백제 시대의 향을 피우는 도구. 백제 금동대향로는 1993년 12월 12일 부여 왕릉원과 사비 외곽성 동성벽 사이에 있는 백제 시대 절터인 부여 능산리 사지에서 출토되었다. 앞발을 높게 올린 용 한 마리가 연꽃송이의 밑부분을 입으로 물고 하늘로 올라 갈 듯 고개를 쳐들고 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연꽃송이의 중앙이 아래...
-
660년부터 663년 동안 백제 유민들이 멸망한 백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던 운동. 백제 의자왕이 항복을 하자 나당 연합군은 왕도 사비도성과 북방의 웅진성을 점령하고 웅진도독부를 설치하여 백제 고토를 지배하려 하였다. 나당 연합군은 사비도성에 들어와 재물을 약탈하고 부녀자들을 겁탈하였으며, 특히 항복한 의자왕에게 굴욕을 강요하는 등 온갖 행패를 자행하였다. 격분한 백제 유민들이 분...
-
충청남도 부여군에 있는 538년 사비 천도 이후 660년 멸망할 때까지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도성. 백제는 475년 고구려의 공격으로 한성이 함락되면서 웅진으로 천도하였는데, 점차 국력을 회복함에 따라 무령왕이 “다시 강국이 되었음[更而强國]”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웅진도성은 급하게 천도하면서 너무 협소한 지리적 여건 등 때문에 여러 가지로 어려운 점이 많았다. 사비도성은 국력을...
-
백제 제29대 왕. 법왕(法王)[?~600]의 성은 부여(扶餘)이고, 이름은 부여선(扶餘宣)이다. 백제 제28대 왕인 혜왕(惠王)[재위 598~599]의 아들이며, 제30대 무왕(武王)[재위 600~641]의 아버지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와 『수서(隋書)』 등에는 법왕이 위덕왕의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백제 왕실 계보에서 혜왕을 누락하면서 생긴 오류라는 게 학계의...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국립부여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보부상 조직인 저산팔구상무우사의 유품. ‘저산팔구(苧産八區)’란 모시(苧)가 많이 생산되던 충청남도 부여·홍산·남포·비인·한산·서천·임천·정산 등 8개 지역을 뜻한다. 저산팔구의 지역들에서는 모시를 중심으로 상거래가 이루어졌다. 보부상은 등짐장수인 부상(負商)과 봇짐장수인 보상(褓商)으로 구분되는데, ‘상무우사(商務右社...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귀족. 복신(福信)[?~?]의 성은 귀실(鬼室)이다. 백제 제30대 무왕(武王)[재위 600~641]의 조카이자 백제 제31대 의자왕(義慈王)[재위 641~660]의 사촌동생으로 전한다. 부여 부소산에서 발견된 당유인원기공비(唐劉仁願紀功碑)와 『일본서기(日本書紀)』 권26 제명기(齊明紀) 6년 조에 기록된 ‘귀실복신(鬼室福信)’이라...
-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죽절리 봉황산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 봉황산성은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죽절리 봉황산 정상을 감싼 내외 이중 성벽 구조의 석축산성이다. 백제에 의하여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사비도성[현 부여읍]의 서쪽 일원을 방어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경여의 의지를 새긴 바위. 부산각서석(浮山刻書石)은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리 백마강변 암벽에 글자를 새긴 바위이다. 조선 후기 문신 이경여(李敬輿)[1585~1657]의 의지를 기리고자 새긴 것이다. 글은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1607~1689]이 썼으며, 이경여의 손자 이이명(李頤命)[1658~1772]이 글을 바위...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진변리에 있는 부산서원과 관계된 조선 시대의 고문서. 부산서원(浮山書院)은 인조(仁祖)[1595~1649]·효종(孝宗)[1619~1659] 연간에 관료이자 문인으로 활동한 김집(金集)[1574~1656]과 이경여(李敬輿)[1585~1657]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1719년(숙종 45)에 부여 지역 유림들의 공론에 의하여 창건된 서원이다. 1871년...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진변리와 신리 경계의 부산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 부산성은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진변리와 신리 경계에 우뚝 솟아 있는 부산에 있다. 부산 정상부를 둘러싼 테뫼식 토축산성이다. 부산성은 사비도성[현 부여읍]에서 서쪽으로 금강 건너 있어 사비도성 방비를 위하여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지토리에 있는 백제 시대의 석축 산성. 부여 가림성은 백제 시대에 건립된 석축 산성으로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지토리에 있다. 테뫼식의 내성과 내성의 동남쪽으로 이어진 외성으로 구축된 이중성으로, 백제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내성의 길이는 1,325m이고 면적은 92,568㎡이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4호로 지정되었고 202...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가탑리에 있는 백제 시대 절터. 부여 가탑리사지는 백제 시대 절터로 추정된다. 1938년 ‘중견청년수련소(中堅靑年修鍊所)’라는 건물을 짓기 위하여, 이시다 모사쿠[石田茂作]와 사이토 다다시[齊藤忠]에 의하여 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동남리사지에 대한 발굴 조사가 끝난 직후 곧바로 착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조사 당시 부여 가탑리사지는 밭으로 되어 있었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에 있는 개항기 부여현 관아의 객사. 부여 객사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에 있는 개항기 부여현의 관아 건물이다. 각종 의례를 행하거나 외국 사신이나 중앙에서 내려오는 관리들이 지방에 머물 때 사용하던 숙소였다. 부여 객사는 ‘부풍관(扶風館)‘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현재는 ‘백제관(百濟館)’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객사 내부에는 1880년(고...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고란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불상. 부여 고란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보살좌상(扶餘 皐蘭寺 木造阿彌陀如來坐像 및 菩薩坐像)은 아미타여래 좌상을 중심으로 양쪽에 두 보살이 안치되어 있다. 삼존상 가운데 아미타여래좌상과 오른쪽의 보살좌상은 얼굴, 신체 비례, 조각 기법 등이 유사하여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오른쪽 보살상은 대세지보살로 추정되나,...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에서 확인된 백제 시대 복합 유적. 부여 관북리 유적(扶餘 官北里 遺蹟)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일대에서 확인된 백제 사비 시기를 중심 시기로 하고 있는 복합 유적으로, 백제 왕궁지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2001년 2월 5일 사적 제42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사적으...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가탑리에 있는 백제 시대 절터. 부여 관음사지는 사비도성 내부에 있는 사찰로서 서나성의 서편에 있다. 서나성을 사이에 두고 백제 금동대향로가 출토된 부여 능산리 사지와 부여 능산리 고분이 있어 역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부여 관음사지는 2007년 12월 28일 부여군 향토문화유산 제92호로 지정되었다. 지정 면적은 1만 1039㎡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군수리에 있는 조선 시대 가옥. 부여 군수리 고택(扶餘 軍守里 古宅)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군수리에 있는 조선 시대 초가이다. 안채, 헛간채, 광채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건축 양식으로 보아 18세기 후반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헛간채는 1938년 지었다는 기록이 확인된다. 1984년 12월 24일 국가민속문화재 제19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여 군수리 사지에서 발견된 백제 시대 금동 보살 입상. 부여 군수리 금동보살입상은 1936년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군수리의 백제 시대 절터인 부여 군수리 사지에서 보물인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 및 칠지도 등과 함께 발견되었다. 목탑 중심부에서 수습되어, 목탑의 심초석에 사리장엄구와 함께 봉안한 공양물로 보고 있다. 6세기 중반·후반 백제의 우수한 제작...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군수리에 있는 백제 시대 절터. 부여 군수리 사지는 관련 기록이 고문헌에서 확인되지 않고, 발굴 조사에서도 사명(寺名)을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이 출토되지 않아 절터가 있는 마을 이름을 따서 ‘부여 군수리 사지’라고 부르게 되었다. 1963년 1월 21일에 사적 제4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백제 사비 시기의 연못 유적. 부여 궁남지(扶餘 宮南池)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의 남쪽 사비도성 내 남쪽 저습지에 있다. 『삼국사기』 등 문헌 기록에서 확인되는 궁남지로 추정되는 백제 사비 시기의 연못 유적이다. 1964년 6월 사적 제13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사적으...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에서 발견된 백제 시대 금동 관음보살 입상. 1907년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의 절터에 묻혀 있던 무쇠솥에서 다른 한 구의 금동 보살 입상[현재 일본 개인 소장]과 함께 발견되었다. 오른손으로 쥔 보주(寶珠), 머리에 쓴 관(冠)의 정면에 묘사된 작은 불상인 화불(化佛) 등을 근거로 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997년 1월 1일 국보 제293호로...
-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금공리에 있는 백제 시대의 절터. 부여 금강사지(扶餘 金剛寺址)는 1964년과 1969년에 국립박물관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고, 2015년과 2016년도에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1964년도 조사에서 목탑지·금당지·강당지·행랑지·남회랑지가 확인되었고, 1966년도 조사에서 중문지·서승방지·북승방지가 확인되었다. 2015년과 2016...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김시생의 유품. 김시생의 인물 정보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으나, 김시생이 남긴 유품을 통하여 숙종 연간에 내금위 선략장군, 내금위 선략장군 충무위 부사, 어민장군 충무위 부사, 정훈련원봉사 승건공장군, 어민장군겸 원관진간, 인화보병마만호를 지냈음을 알 수 있다. 김시생과 관련해서는 교지 3점, 전령패 1개, 조선도 1점, 천하도 1점, 공신녹권...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 있는 백제 시대 성곽. 부여 나성은 백제 수도 사비를 방어하기 위하여 쌓은 도성의 외곽 방어 시설이며, 성곽 체제를 이루는 사비도성의 중심 시설이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5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사적으로 변경되었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에 있는 개항기 부여현 관아의 내동헌. 부여 내동헌(扶餘 內東軒)는 개항기 부여현 관아의 중심적인 건물로 현감과 가족의 거주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여지도서』에 동헌을 포함한 아사(衙舍) 51칸으로 기록되어 있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 있는 백제 시대의 절터. 부여 능산리 사지(扶餘 陵山里 寺址)는 1992년 1차 조사를 시작으로 2023년까지 모두 11차례 조사가 되어 중문지, 목탑지, 금당지, 강당지, 공방지, 회랑 등 사역 중심지와 배수로, 목교지와 석교지, 기와 가마 터 등의 부속 시설들이 확인되었다. 탑지 심초부에서 출토된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의 명문에 의하여 능산리...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백제 사비 시기의 사리감. 충청남도 부여군 능산리 고분군 좌측의 부여 능산리 사지 목탑터 중심에 있는 심초석 상면에서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사리감은 심초석의 가장자리에서 동쪽으로 약 45도로 뉘어져 있었다.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형태의 사리 장치로서 삼국 시대 유물로서는 처음으로 사리 공양자...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 있는 백제 시대 고분군. 부여 능안골 고분군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북쪽, 부여 왕릉원의 동쪽에 있는 능선의 정상부와 사면부에 만들어진 백제 사비 시기 돌방무덤 고분군이다. 2000년 7월 22일에 사적 제42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사적으로 변경되었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국립부여박물관에 있는 당 장수 유인원의 공적을 기념하는 백제 시대 비석. 부여 당 유인원 기공비(扶餘 唐 劉仁願 紀功碑)는 당과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킬 때 당군의 일원으로 전공을 세운 당 장수 유인원(劉仁願)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석이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구교리 대조사에 있는 조선 후기 목조 보살 좌상. 부여 대조사 목조보살좌상(扶餘 大鳥寺 木造菩薩坐像)은 대조사의 주불전인 원통보전 안에 봉안되어 있는 17세기 보살 좌상이다. 원통보전은 일반적으로 관음보살을 독존으로 봉안하므로, 부여 대조사 목조보살좌상을 관음보살로 보기도 한다. 부여 대조사 목조보살좌상은 얼굴의 형태와 이목구비의 표현, 그리고 머리에 쓴 관...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구교리 대조사에 있는 고려 전기의 석조 보살 입상.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고려 전기에 유행한 거대 석불을 대표한다. 충청남도 부여군 대조사 경내 원통보전 뒤쪽 언덕의 화강암 암반 위에 조각한 높이 10m의 대불이다. 미륵보살로 불리고 있으나, 근거는 미약하며, 관음보살로 불린 적도 있다. 크기나 형태가 높이 18m에 이르는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사의...
-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에 있는 무량사의 중심 전각. 부여 무량사 극락전(扶餘 無量寺 極樂殿)은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무량사에 있는 중심 불전이다. 외관상으로는 2층이지만 내부에서는 아래층과 위층이 구분되지 않고 하나로 트여 있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35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보...
-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무량사에 소장되어 있는 목조 불패. 전패(殿牌)는 본래 왕의 상징물로 왕의 초상을 대신하던 것이었다. 전패는 지방 관아에 있는 객사에 모셔 각종 하례 의식 때마다 수령을 포함한 모든 관원 등이 경배하는 의물(儀物)로도 사용되었다. 불교에서는 의례와 장엄에 사용되는 다양한 패들을 조성하여 구분한다. 형태는 주로 명문이 적혀진 패가 놓일 부분을 제외한 나...
-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무량사에 있는 고려 전기 팔각 석등. 부여 무량사 석등(扶餘 無量寺 石燈)은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무량사에 있는 10세기경의 팔각 석등이다. 부여 무량사 석등은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3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보물로 변경되었다....
-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무량사 극락전에 있는 조선 후기의 소조 불상. 조선 인조 때 재건된 부여 무량사 극락전에 봉안되었으며, 아미타불·관음보살·대세지보살로 구성된 전형적인 아미타삼존상이다. 임진왜란 이후 대형 불전에 봉안하기 위한 대형 소조상의 제작이 유행하는데, 부여 무량사 소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그중 하나이다. 1976년 부여 무량사 소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을 개금하는 과...
-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무량사에 있는 개항기 사찰 전각 . 부여 무량사 영산전(扶餘 無量寺 靈山殿)은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무량사 내에 있다. 영산전은 영가산(靈駕山)에서 석가가 설법하던 『법화경』의 영산회상을 상징하는 건물로 팔상전이라고도 부른다. 1872년(고종 9) 원열화상이 명부전과 함께 건립하였다고 한다. 2010년 12월 30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1...
-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무량사에 있는 고려 전기 오층 석탑.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扶餘 無量寺 五層石塔)은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무량사에 있는 고려 전기의 오층 석탑이며, 백제 시대와 통일 신라 시대의 석탑 양식도 모두 지니고 있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8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에서 발견된 금동제 불상들.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 출토 금동불상 일괄(扶餘 無量寺 五層石塔 出土 金銅佛像 一括)은 1971년 부여 무량사 극락전 앞에 있는 고려 시대 오층 석탑인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의 해체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3층 몸돌에서 나온 금동보살좌상 1구는 고려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1층 몸돌에서 발견된 금동아미타여래삼...
-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반교리에 있는 민가와 경작지를 두른 담장. 부여 반교마을 옛 담장은 민가와 경작지를 두른 담장으로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반교리에 있다. 2006년 12월 4일 국가등록문화재 제28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국가등록문화재로 변경되었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보광사 건립을 기념하며 세운 고려 후기 비석. 부여 보광사지 대보광선사비(扶餘 普光寺址 大普光禪寺碑)는 고려 시대에 건립된 사찰 보광사의 건립을 기념하며 세운 것이다. 고려 후기에 건립되었고, 이후 조선 후기 영조 대에 고쳐 세웠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0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와 쌍북리 경계 부소산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 부여 부소산성은 백제 사비도성의 왕성에 해당하는 핵심 유적이며, 백제 멸망 이후 통일 신라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테뫼식 산성으로 변화되면서 증·개축 되어 왔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사적으로 변경되...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백제 시대 사택지적이 세운 기념비. 부여 사택지적비(扶餘 砂宅智積碑)는 백제 시대 사택지적(砂宅智積)이라는 사람이 당(堂)과 탑(塔)을 세우면서 소회를 새겨서 세운 당탑 건립 기념비이다. ‘사택지적당탑비’라고도 부른다. 2014년 12월 31일 보물 제184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산직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 금강의 지류인 연화천[응평천]변, 송국리 유적에서 이어지는 저평(低平)한 구릉의 끝 부분에 고인돌 2기가 분포한다....
-
충청남도 부여군 남면 삼용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부터 백제 시대까지의 복합 유적. 부여 삼용리 유적(扶餘 三龍里 遺蹟)은 홍산-구룡 간 도로 확장 및 포장 공사에 따른 발굴 조사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고려대학교 고고환경연구소에서 2004년 3월 23일부터 4월 12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청동기 시대 주거지 3기, 원삼국 시대 불명유구 1기, 백제 시대 주거지 1기...
-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현내리에 있는 백제 시대의 산성. 부여 석성산성은 현내리 서쪽의 야산 정상부에 자리한 3중 석축산성이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8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사적으로 변경되었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백제 시대 석조. 부여 석조는 I자형 받침대와 반구형[사발형]의 화강암제 석조로서, 부처에게 공양하는 연꽃을 심는 용기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받침대의 상태는 양호하나 수조는 구연부가 대각선으로 박락된 상태이고, 둥근 기면 일부에도 박락된 상태이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9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송국리 일대에 있는 청동기 시대 대형 마을 유적. 부여 송국리 유적은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청동기 시대 취락 유적이다. 1974년 주민의 신고로 수습 조사된 돌널무덤에서 비파형동검을 비롯하여 청동끌[銅鑿], 대롱옥[管玉], 곱은옥[曲玉], 간돌검[磨製石劍], 간돌화살촉 등의 유물이 출토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1975년 송국리를 포함한 소사리와 산직리 일대의...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신동엽 시인의 집터.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태어난 신동엽[1930~1969] 시인이 소년기부터 청년기를 보낸 가옥 터이다. 신동엽은 서구의 모더니즘과 전통 보수주의가 양립하는 1950~1960년대에 6·25 전쟁과 4·19 혁명을 거치면서 한국 시단에서 역사와 현실에 대한 자각과 시화를 통하여 근원적인 민중시를 정착시키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에 있는 백제 시대에 기와를 굽던 가마터. 부여 쌍북리 요지는 1941년 ‘부여 신궁’ 진입 도로 개설 공사 과정에서 백제 사비 시기의 가마가 발견되면서 존재가 알려졌다. 이후 일본인에 의하여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보고서 등의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구조 등은 알 수 없지만, 1기의 가마가 확인되었다. 2015년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고고...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중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여흥 민씨의 가옥. 부여 여흥민씨 고택(扶餘 驪興閔氏 古宅)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중정리에 있는 있는 조선 후기 가옥이다. 19세기 후반의 건축 양식이 반영된 건물로 전형적인 양반 사대부의 가옥 형태를 보이면서도 경상도 가옥 양식이 나타난다. 초기에는 여흥 민씨 후손 민칠식의 이름을 붙여 ‘민칠식 고택’으로 불렀으나 현재는 ‘부여...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염창리에 있는 백제 시대 고분군. 부여 염창리고분군은 논산-부여 간 국도 제4호 확장 사업에 따른 구제 발굴에 따라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조사 결과 백제 시대 돌방무덤과 움무덤, 독두덤, 돌덧널독무덤이 확인되었다. Ⅰ구역 돌방무덤 13기. Ⅱ구역 돌방무덤 22기, Ⅲ구역 돌방무덤 99기·움무덤 1기, Ⅳ구역 돌방무덤 86기·독무덤 1기, Ⅴ구역 돌방무덤 18...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 있는 백제 시대 고분군.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의 사비도성 동쪽에 있는 능산리산 남사면에 3곳으로 나뉘어 조성된 왕릉원으로 추정되는 백제 사비 시기 돌방무덤 고분군이다. 1963년 1월 21일 부여 능산리 고분군이라는 명칭으로 사적 제14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9월 17일 능산리 고분군에서 부여 왕릉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021년 11월...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리에 있는 백제 시대의 절터. 부여 왕흥사지(扶餘 王興寺址)는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 등의 사서에 유래와 창건 연대뿐만 아니라 왕이 강을 건너 사찰에 행차한 사실 등이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어 백제 사비 시기의 중요한 사찰 유적으로 알려져 왔다. 1934년에는 부여 왕흥사지에서 ‘왕흥(王興)’명의 고려 시대 기와가 수습되어 왕...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백제 사비 시기의 사리기.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는 2007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실시한 부여 왕흥사지 발굴 조사에서 발견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리기로 알려져 있다.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는 2012년 6월 29일 보물 제1767호로 지정되었다가, 2019년 6월 26일 국보 제327호로 지정되었...
-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에 있는 고려 시대 석탑. 부여 장하리 삼층석탑(扶餘 長蝦里 三層石塔)은 충청남도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모방한 고려 시대 백제계 석탑이다. 한산사지석탑이라고도 한다. 1931년 해체 복원되면서 1층 몸돌에서 범자(梵字) 다라니경 조각과 상아제 불상 등이 발견되었다. 1962년 해체 때는 2층 몸돌의 원형 공간에서 이중의 사리 용기가 발견되었다. 유물...
-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정각리 정각사에 있는 조선 시대 보살상. 부여 정각사목조관음 및 세지보살좌상(扶餘 正覺寺木造觀音 및 勢至菩薩坐像)은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정각리에 있는 정각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데, 석가불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관음보살상, 왼쪽에 세지보살상이 있다. 관음보살상과 세지보살상이 머리에 쓴 관의 중앙에 각각 작은 부처인 화불(化佛)과 정병이 있어 관음보살과 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정득열의 묘와 비. 정득열(鄭得說)[?~1592]은 본관이 하동(河東)이며, 자는 군석(君錫)이며 하동부원군(河東府院君) 정인지(鄭麟趾)의 후손이다. 정득열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사천현감으로 있으면서 왜적 1만여 명이 진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민병 300여 명을 모아 경상우병사 유숭인의 선봉이 되어 출전...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백제 시대의 절터. 부여 정림사지(扶餘 定林寺址)는 1940년 충청남도 부여군의 도시 계획과 신궁 조성 계획 대상지에 포함되어 1942년에 발굴 조사가 처음 이루어졌다. 정림사가 창건될 당시의 사명은 고문헌에서 확인되지 않아 알 수 없으나, 1943년에 이루어진 발굴 조사에서 “태평무진팔년정림사대장당초(太平八年戊辰定林寺大藏當草)”라고 적힌 고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부여 정림사지에 있는 고려 시대 석조 불상. 부여 정림사지 석조여래좌상(扶餘 定林寺址 石造如來坐像)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중심지에 있는 6세기 후반 백제 시대 유적인 부여 정림사지 강당 터에 봉안되어 있다. 부여 정림사지 석조여래좌상은 국보인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함께 사찰의 중심축선 위에 있다. 부여 정림사지에서는 고려 시대 정림사의 중창을...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정림사터에 있는 백제 시대 석탑.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扶餘 定林寺址 五層石塔)은 백제 사비 도성의 중심 사찰인 정림사터에 건립한 7세기 오층석탑이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현존하는 두 기의 백제 석탑 가운데 하나이다. 목탑 형식으로 충청도와 전라도 일대에서 조성되는 고려 시대 백제계 석탑의 시원이 된다. 2021년 국보 제9호로 지정되었고 2...
-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정암리에 있는 백제 시대의 기와 가마터. 부여 정암리 와요지는 백제 사비 시기에 수도와 주변의 주요 건물에 공급하는 기와를 구웠던 가마터이다. 1988년부터 1991년까지 국립부여박물관에서 3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를 하였으며, 출토 유물이나 기와 가마의 구조적 형식으로 볼 때 6세기 중엽에서 7세기 초에 조영된 와요지로 추정된다. 1992년도 5월 4일 사적...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정흥인의 묘. 정흥인(鄭興仁)[1363~1436]은 본관이 하동(河東)으로 고려 때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를 지낸 정지연(鄭芝衍)의 후손이자 조선 전기 문신 정인지(鄭麟趾)[1396~1478]의 아버지이다. 조선 태종 때 내직별감(內直別監), 석성현감(石城縣監) 겸 권농병마단련판관(勸農兵馬團練判官)을 역임하였고, 이후 충적덕...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조왕사에 있는 고려 시대 석탑. 부여 조왕사 석탑(扶餘 朝王寺 石塔)은 고려 시대 석탑으로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조왕사에 있다. 1987년 홍수 때 조왕사 대웅전 앞에서 노출된 석탑 조각 등을 수습하여 삼층석탑으로 복원하였으나 다른 용도의 석재를 조합하여 원래 모습은 확인하기 어렵다. 1913년 같은 자리에서 고려 시대 석불 좌상인 금성산석불...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성리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 부여 증산성은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성리 서쪽의 증산에 축조된 테뫼식 석축산성이다. 1967년 3월 25일 사적 제15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사적으로 변경되었다....
-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지선리에 있는 백제 시대 고분군. 부여 지선리 고분군은 백제 시대의 고분군으로 총 16기의 분묘가 확인된다. 부여 지선리 고분군에서 확인되는 분묘 중 1호 돌방무덤의 경우 특이하게도 널방 가운데에 4매의 판석을 세워 널방을 구분한 방식을 사용한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대체로 사비기 돌방무덤의 특징인 수평식 평천장 형태로 조성되었다. 부여 지선리 고분군은 1...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 있는 백제 사비도성을 방어하기 위하여 축조된 산성. 부여 청마산성은 높이 200m 이하의 산지와 곡간부에 설치된 포곡식 산성이다. 백제 산성 중 최대급에 해당하는 규모로 사비도성의 최후 방어성으로 추정된다. 부여 청마산성의 축조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성내에서 출토된 백제 시대의 와당과 토기, 내탁 구조로 축조된 성벽 단면 형태 등으로 미루어 백제...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 부여 청산성은 백제 시대에 축조된 산성으로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에 있다. 부소산 내부에 있는 산성 중 군창지 일원을 두른 둘레 약 800m의 테뫼식 산성이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5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사적으로 변경되었다....
-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태양리에 있는 백제 시대 고분. 부여 태양리 백제석실고분은 백제 시대의 고분으로 총 1기의 분묘가 확인된다. 전형적인 사비 시기 굴식돌방무덤의 특징을 보이고 있는 고임식[능산리형] 석실분이다. 1984년 1월 11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4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기념물로 변경되...
-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현내리에 있는 고려 시대 석탑. 부여 현내리 삼층석탑(夫餘 縣內里 三層石塔)은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현내리 탑골마을에 있는 고려 시대 삼층석탑이다. 1973년 12월 26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변경되었다....
-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남촌리에 있는 조선 시대 홍산현 관아 건물. 부여 홍산현 관아는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남촌리에 있는 조선 시대 홍산현의 관아 건물이다. 『여지도서(輿地圖書)』 공해조에 따르면 객사 15칸과 아사 38칸, 관청 10칸과 현사 3칸 등의 건물 이름과 크기가 각각 기록되어 있다. 부여 홍산현 관아 시설 중 현재 홍산객사[충청남도 유형문화재]와 홍산동헌[충청남도...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화지산에 있는 백제 시대 건물 유적. 부여 화지산 유적(扶餘 花枝山 遺蹟)은 백제 후기 사비도성의 중앙부에 있는 백제 건물 유적이다. 부여 화지산 유적의 건립 경위를 알려 주는 기록물은 없으나, 655년 건립된 망해정이 화지산 유적에 속한 건물일 가능성이 크다. 부여 화지산 유적은 2001년 1월 4일 사적 제42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가증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황일호의 신도비와 아들 황진의 효자각. 부여 황일호 신도비 및 황진 효자각(扶餘 黃一晧 神道碑 및 黃璡 孝子閣)은 황일호(黃一皓)[1588~1641]의 신도비와 황진(黃璡)의 효자각을 아울러 지칭한다. 황일호는 1638년(인조 16) 의주부윤으로 있을 때 명나라를 돕고, 청나라를 치고자 최효일(崔孝一)[?~1644] 등과 모의하...
-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조현리 영모당에 소장되어 있는 계성군 김임의 영정. 김임은 1480년(성종 11)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이후 의성현령(義城縣令)·강령현감(康翎縣監)·양주목사(楊州牧使)를 지냈다. 1507년(중종 1) 정국공신(靖國功臣) 3등으로 책봉되었고, 계성군과 한성판윤(漢城判尹)을 역임하였다. 영모당에 모시면서 봄과 가을 두 번에 걸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영모당에는...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에 있는 백제 시대 유적. 부여구아리백제유적(扶餘舊衙里百濟遺蹟)은 1943년 수습 조사 중 천왕명 기와가 수습되고, 유적 북쪽 인근에서 국립부여박물관으로 이전한 목탑 심초석이 발견되었다고 알려져 있어 천왕사지로도 불렸다. 그러나 이후 발굴 조사에서는 절터로 추정할 만한 흔적을 확인하지 못하였다. 면적은 5,445㎡이다. 부여구아리백제유적은 1993년 7...
-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 있었던 통일 신라 시대 행정 지명. 선사 시대부터 대규모 청동기 마을을 형성한 정치 세력이 자리 잡았고 삼한 시대에는 마한의 소국이 있었으며, 4세기 중엽에 백제 영토로 편입된 뒤 538년부터 백제의 새로운 왕도(王都)로 개발되어 660년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백제 시대의 이름은 소부리(所夫里), 사비(泗沘)였으며, 부여군(...
-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조현리 경주김씨 종중 영모당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 문신인 김동효의 영정. 김동효(金東孝)는 1861년(철종 12)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에서 태어났고, 관직 생활은 경인 금영감시·경자순응참봉 등을 역임하였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에 있는 개항기 관아. 부여동헌(扶餘東軒)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에 있는 개항기 부여현의 관아 건물이다. 동헌·객사·내동헌이 남아 있으며 부여동헌은 중심적인 건물로 수령의 집무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초연당(超然堂)’ 또는 ‘제민헌(濟民軒)’으로도 불렸다. 부여동헌은 1869년(고종 6) 재건되었고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내동헌를 포함한 아사...
-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무량사에 지장보살과 시왕상을 모신 사찰 전각. 부여무량사명부전(扶餘無量寺冥府殿)은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무량사에 있다. 지장보살과 명부의 시왕상을 모신 곳으로, 지장전이라고도 부른다. 1872년(고종 9) 원열화상에 의하여 건립되었다고 한다. 2004년 4월 10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8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
-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무량사에 있는 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 등의 조선 후기 불교 조각군. 부여무량사지장보살및시왕상일괄(扶餘無量寺地藏菩薩및十王像一括)은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무량사 명부전 중앙 불단 위의 나무로 만든 지장보살좌상과 좌우의 무독귀왕(無毒鬼王)과 도명존자(道明尊者)가 삼존상을 이루며, 삼존상 좌우에 각각 5명의 시왕(十王)과 판관·녹사·사자(使者) 등...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가신리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보광사는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 전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부여보광사지와 관련된 유물로는 고려 시대 보광사를 크게 일으킨 원명국사의 비로서 2023년 현재는 국립부여박물관에 보관 중인 부여 보광사지 대보광선사비(扶餘 普光寺址 大普光禪寺碑)[보물]가 있다. 부여보광사지는 1995년 10월 7일 충청남도 기...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에 있는 백제 시대의 절터. 부여부소산성서복사지는 백제 사비 시기의 후원으로 추정되는 부여 부소산성 내부의 부소산 서남록의 남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에 있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석목리에 있는 고려 시대 석불. 부여석목리석조비로자나불좌상(扶餘石木里石造毘盧蔗那佛坐像)은 노은사(老隱寺)[속칭 ‘논절’]라 불리는 고려 시대 절터에 방치되어 있었는데, 1987년 남궁순(南宮淳)이 작은 법당을 건립하여 봉안하였다. 부여석목리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화강암으로 제작된 불좌상으로 높이 110㎝, 두 무릎의 폭 80㎝이다. 원래 노은사 절터에 함께 있던...
-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세탑리에 있는 고려 시대 오층석탑. 부여세탑리오층석탑(扶餘細塔里五層石塔)은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세탑리 고려 시대 절터에 건립된 고려 시대 오층석탑이다. 1973년 12월 26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변경되었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에 있는 백제 시대 가마 터. 부여쌍북리북요지(扶餘雙北里北窯址)는 1978년 건물 신축 공사 도중 백제 시대 석제 불상이 발견되어 ‘쌍북리 사지’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1982년 6월 토지 소유주가 목욕탕을 건립하기 위하여 건축 공사를 진행하던 중 백제 시대 기와 조각이 다량 출토되어 충남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발굴 조사 결...
-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용당리에 있는 백제 시대의 공동 우물. 부여용당리우물은 백제 시대부터 현대까지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용당4리 부두(扶頭)마을의 공동 우물로 사용되었으나 집집마다 샘을 파고 상수도가 설치되면서 우물의 기능은 소멸되었다. 2004년 4월 10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8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용정리에 있는 백제 시대 건물지. 부여 용정리 소룡골 백제건물지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 있는 부여 나성의 외곽에 있다....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왕족. 부여융(扶餘隆)[615~682]의 이름과 자는 모두 ‘융(隆)’이다. 할아버지는 백제 제30대 무왕(武王)이고, 아버지는 백제 제31대 의자왕(義慈王)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정림사지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정언욱의 영정과 초본. 부여정언욱영정및초본(扶餘鄭彦郁影幀및抄本)은 2007년 10월 30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9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변경되었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중정리에 있는 백제 시대 건물지. 1978년 연화문 수막새 등이 확인되어 매장 문화재 발견 신고가 이루어지면서 부여중정리백제건물지에 대한 학술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그 후 2006년에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에 의하여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1985년 7월 19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5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
-
1929년 충청남도 부여군청에서 간행한 부여군지. 『부여지(扶餘誌)』는 1929년 부여군청에서 부여군의 지역 정보를 모두 수집하여 정리하고 간행한 읍지류이다....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왕족. 7세기 중엽 백제의 왕자로서 의자왕 때 사비에서 왜(倭)로 건너가 활동하였으며, 성은 부여씨(扶餘氏)이고, 이름은 풍(豊) 또는 풍장(豊璋)이다. 백제가 멸망한 뒤 부흥운동군의 요청에 따라 661년경 백제로 돌아와 왕이 되었으며, 663년 백강구전투(白江口戰鬪)에서 백제와 왜 연합군이 신라와 당 연합군에게 전멸당하자 고구려로...
-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 있었던 조선 시대 행정 구역. 조선 시대 인문 지리서인 『택리지(擇里志)』를 살펴보면 부여현은 옛 백제의 도읍으로 조룡대(釣龍臺)·낙화암(落花巖)·자온대(自溫臺)·고란사(皐蘭寺)와 같은 백제 시대의 흔적을 간직한 곳이었다. 『택리지』에서는 부여의 지역적 특징으로 경치가 매우 훌륭하며, 땅이 기름져 부유한 사람들이 많다고 하였다. 다만 도읍으로는 지대가 좁아...
-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상천리에 있는 고려 시대 마애불상. 부여홍산상천리마애불입상은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홍산초등학교 뒤편 태봉산 정상의 북쪽 1.2㎞ 되는 구산의 중턱에 있는 높이 5.2m의 고려 시대 마애불이다. 편평한 네모 형태 암반 북동쪽에 높이 6m, 너비 7.5m 되는 한 면을 선택하여 여래 입상 1구를 얕게 조각하였다. 바위의 앞쪽이 10° 정도 기울어져 보존 상태가...
-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홍양리에 있는 고려 전기 오층 석탑. 부여홍양리오층석탑(扶餘鴻良里五層石塔)은 고려 전기에 건립된 백제계 오층석탑이다. 1974년 9월 1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변경되었다....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왕족. 부여효(扶餘孝)[?~?]의 성은 부여씨(扶餘氏)이다. 백제 제31대 의자왕의 아들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북고리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 북고리 증산성은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북고리에 있다. 금강의 남안과 접하는 산봉우리에 조성된 테뫼식 토축산성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비당리에 있던 청동기 시대 무덤. 비당리 토광묘는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비당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으로, 움무덤 1기가 확인되었다....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장수. 사걸(沙乞)[?~?]은 백제 대성팔족(大姓八族)의 하나이자 사비기에 왕비족(王妃族)으로 급부상한 유력한 귀족 가문인 사씨(沙氏) 출신이다. 사씨는 정치적 기반이 사비 지역이었는데, 538년(성왕 16) 사비 천도 과정에서 유력한 정치 세력으로 부상하였다. 그러나 무왕 재위 초기에 사씨 세력이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무왕...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지역에 있었던 백제 왕도 지명. 사비(泗沘)는 소부리(所夫里)에서 연원하며, 성왕이 538년(성왕 16)에 웅진[지금의 공주]에서 천도함으로써 백제의 왕도가 되었다. 660년 나당 연합군의 침략으로 사비성이 함락된 후 당나라가 사비도성에 백제도호부를 설치하였으며, 신라가 672년에 사비 지역을 차지하여 소부리주(所夫里州)를 두었다....
-
538년 백제 성왕이 현재의 충청남도 부여군인 사비로 도읍을 옮긴 사건. 백제는 475년 고구려군의 공격을 받아 왕도 한성(漢城)이 함락되고 개로왕(蓋鹵王)과 가족이 몰살하자 다급히 웅진(熊津)으로 천도하였다. 웅진 도읍기 초기에는 제22대 문주왕(文周王)이 재위 3년 만에 암살되고, 뒤이어 13세에 즉위한 제23대 삼근왕(三斤王)도 재위 3년에 갑자기 죽는 등 혼란스러웠으나, 제...
-
664년 3월 백제부흥군이 사비산성을 거점으로 벌인 전투. 660년 7월 사비성이 함락되고 의자왕이 항복 의례를 행한 이후 백제 고지에서는 부흥전쟁이 일어났다. 백제부흥군은 임존성과 주류성으로 거점을 옮겨 가면서 나당연합군과 치열한 전투를 계속하였지만, 663년 9월 주류성의 함락과 11월 임존성에서의 패배로 기세가 완전히 꺾이고 말았다....
-
660년 7월 13일 나당 연합군이 사비성을 공략하여 함락한 사건. 백제는 의자왕 대에 신라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였다. 의자왕 2년인 642년 7월에는 미후성 등 40여 성을 빼앗았으며, 8월에는 대야성을 공략하여 함락하고, 성주 품석과 품석의 아내와 자식을 베었다. 648년에는 요거성 등 10여 성을 차지하였고, 649년에는 석토성 등 7개 성을 공략하였다. 의자왕은 신라를 지속...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부소산에 있는 2층 누각. 사자루(泗泚樓)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소산 내에서 가장 높은 서쪽 봉우리에 세워진 2층 누각이다. 사자루는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9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변경되었다. 사자루는 ‘사비루(泗沘樓)’로 잘못 부르...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성리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 사자봉산성(獅子峰山城)은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성리 마을의 남쪽을 감싸는 사자봉(獅子峯)에 축조된 테뫼식 토석혼축산성이다....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 백제부흥운동에 참여한 장군. 사타상여(沙咤相如)[?~?]는 백제 대성팔족(大姓八族)의 하나이자 사비기에 왕실 외척으로 급부상하여 성장한 유력한 귀족 가문인 사씨 출신이다. 사타상여의 사타씨(沙咤氏)는 사택씨(沙宅氏)와 통용되며, 단일성으로 표기할 때는 사씨(沙氏)이다....
-
충청남도 부여를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 무왕의 왕비. 사택왕후(沙宅王后)[?~?]는 백제 제30대 무왕의 비이다. 백제 대성팔족(大姓八族)의 하나인 사씨 가문으로, 좌평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이다. 사택왕후의 사택씨(沙宅氏)는 사탁씨(沙矺氏) 또는 사탁씨(沙乇氏)라고도 불리며, 단일성으로 표기할 때는 사씨(沙氏)이다. 『수서(隋書)』「백제전」에서 백제의 유력한 여덟 가문인 대...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고위 관리. 사택지적(砂宅智積)[?~?]은 백제 대성팔족(大姓八族)의 하나이자 사비 시기에 왕실 외척으로 급부상한 귀족 가문인 사씨로 나지성(奈祗城) 출신이다. 사택지적의 사택씨(沙宅氏)는 사탁씨(沙矺氏) 또는 사탁씨(沙乇氏)라고도 불리며, 단일성으로 표기할 때는 사씨(沙氏)이다....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관리. 상영(常永)[?~?]은 백제 사비 도읍기인 의자왕 대 중앙 부서에서 활동한 고위 관리이다....
-
조선 전기 부여 출신의 문신. 상진(尙震)[1493~1564]의 본관은 목천(木川)이며, 자는 기부(起夫), 호는 송현(松峴)·향일당(嚮日堂)·범허재(泛虛齋) 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상영부(尙英孚)이고, 할아버지는 상효충(尙孝忠)이다. 아버지는 상보(尙甫)이고, 어머니는 김휘(金徽)의 딸 연안 김씨(延安 金氏)이다. 부인은 개산부수 이효지(李孝智)의 딸 전주 이씨(全州 李氏)이다....
-
고려 전기 부여 지역의 효자. 서공(徐恭)[1101~1171]의 본관은 이천(利川)이며, 거란군을 물리치고 태보내사령(太保內史令)을 지낸 서희(徐熙)의 고손자이다. 아버지는 검교호부상서 판장작감사(檢校戶部尙書 判將作監事) 서균(徐鈞)이고, 어머니는 검교예부시랑 급사중(檢校禮部侍郞 給事中) 이당감(李唐鑑)의 딸 창화군대부인 이씨(昌化郡大夫人 李氏)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서 돌을 이용하여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던 시대. 석기 시대는 인류 문명의 시작 이래 돌을 이용하여 만든 도구인 석기를 사용하던 시대를 통칭하는 개념으로, 일반적으로 석기의 제작 방법에 따라 뗀석기를 사용하는 구석기 시대와 간석기를 사용하는 신석기 시대로 구분한다. 한반도에도 구석기 시대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진 것은 1960년대 북한의 굴포리 유적, 남한...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석목리에 있는 백제 시대 유적. 석목리 224-3 일원 유적은 부여-탄천 간 도로 확장 및 포장 공사로 확인된 백제 시대 유적이다. 2004년 6월부터 2005년 2월 1차 조사가 이루어졌고, 2007년 12월 2차 조사가 충청매장문화재연구원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백제 시대 건물지 7기, 주거지 5기, 조선 시대 주거지 1기, 동나성의 성벽을 확인...
-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석성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군. 석성 석성리 고인돌군(石城 石城里 고인돌群)은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3㎞ 떨어진 곳에 있는 석성리 양촌마을 내 석성정미소 뒤편의 주택과 경작지 주변에 있다. 석성 석성리 고인돌군의 동쪽으로 현내천이 흐르고, 주위에 작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정각리 정각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부도군. 석성 정각사 부도군(石城 正覺寺 浮屠群)은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정각리 정각사에 있는 5기의 부도이다. 백붕당대사 부도, 선월당대사 부도 외에 다른 부도는 이름을 알 수 없다. 석성 정각사 부도군은 2005년 7월 6일 부여군 향토문화유산 제76호로 지정되었다....
-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석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석성현 관아의 동헌. 석성동헌(石城東軒)은 조선 시대 석성현 관아의 중심적인 건물로 수령의 집무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4칸으로 기록되어 있다. 1987년 8월 3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 있었던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행정 구역. 석성현은 지금의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지역에 설치되었다. 석성현은 백제 때 진악산현(珍惡山縣)이었다가 통일 신라 이후 757년 신라 경덕왕 때 석산현(石山縣)으로 명칭을 변경하였으며, 부여군의 속현이었다. 고려 초 940년 석성현(石城縣)으로 고쳤다가, 1018년(현종 9)부터 공주에 예속되었다. 1172년(명종...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석우리에 있던 청동기 시대 마을 유적. 석우리 유적(石隅里 遺蹟)은 부여군 규암 우회 도로 및 서천-서천IC 도로 건설 공사에 따른 발굴 조사에서 확인된 청동기 시대 유적이다. 충남문화재연구원에서 2005년 3월 28일부터 10월 23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 조사 결과 석우리 유적 외에 나복리 유적, 원문리 164-12 유적 등 총 3개의 유적이...
-
충청남도 부여군의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초기 철기 시대를 통칭하는 시대. 선사 시대(先史 時代)는 역사 시대(歷史 時代)에 대칭되는 개념으로, 문자 자료가 없는 시대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한국 고고학에서는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초기 철기 시대가 선사 시대에 해당한다....
-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오덕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선조의 태실비. 선조대왕태실비(宣祖大王胎室碑)는 조선 제14대 선조(宣祖)의 태함(胎函)을 만든 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태실비(胎室碑)이다. 태함은 왕실에서 출산이 있을 때 탯줄을 묻던 석실을 말한다. 원래는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오덕리 장자마을에 있었다. 1570년(선조 3) 충화 선조대왕 태실비를 세웠고, 이후 1747년(영조...
-
백제 제26대 왕. 성왕(聖王)[?~554]의 성은 부여(扶餘)이고, 이름은 부여명농(扶餘明穠) 또는 부여명(扶餘明)이다. 백제 제25대 왕인 무령왕(武寧王)[재위 501~523]의 아들이며, 제27대 위덕왕(威德王)[재위 554~598]과 제28대 혜왕(惠王)[재위 598~599]의 아버지이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성왕·명왕(明王)·성명왕(聖明王)으로 기재되어 있다....
-
충청남도 부여군 의열사와 삼충사에서 제향하고 있는 백제 말기의 충신. 성충(成忠)[?~656]은 의자왕 초기부터 국왕을 보필하였다. 백제의 제1관등인 좌평(佐平)을 역임한 것으로 보아, 사비의 중앙 부서에서 책임자를 맡아 정무의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성충은 656년(의자왕 16) 국왕이 궁인(宮人)들과 사치와 향락에 빠져 술 마시기를 그치지 않자 적극 간언을 하다가, 의...
-
충청남도 부여군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백제의 왕도와 관련된 역사 유적. 부여(扶餘)는 삼국 시대 백제의 마지막 왕도였다. 백제는 538년(성왕 16) 웅진[공주]에서 사비[부여]로 천도하면서 부여는 538년부터 660년까지 백제의 왕도로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사비 천도는 계획적으로 추진되었기 때문에 사비왕도는 도성제(都城制)에 기초하여 체계적으로 조영되었...
-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 귀덕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 세도 귀덕리 고인돌은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 청송리의 세도면행정복지센터에서 부흥로를 따라 동쪽으로 약 2㎞가량 지점에서, 2023년 현재 폐교된 귀덕리 인세초등학교[현재 세도노인대학] 정문 도로변 좌측으로 약 100m 거리에 있다. 북쪽의 함박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려오는 가지 능선의 말단부이며, 남쪽으로는 넓은 평야가 펼쳐...
-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 반조원리 금강 변에 있는 정자 터와 제방림. 삼의정(三宜亭)은 조선 후기 학자 윤광안(尹光顔)[1757~1815]이 만년에 후학을 양성하기 위하여 금강 변에 세운 정자이다. 삼의당(三宜堂)이라고도 부른다. 삼의정 양쪽으로는 여러 종의 나무로 이루어진 제방림이 이어져 있다. 강필효(姜必孝)[1764~1848]가 남긴 『해은선생유고(海隱先生遺稿)』에 따르면, ‘...
-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 사산리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 세도 토성산성(世道 土城山城)은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 사산리 토성산에 축조된 이중의 테뫼식 토축산성이다. 2009년 12월 24일 부여군 향토문화유산 제106호로 지정되었다. 세도 토성산성은 금강의 서쪽변에 자리한 야산의 정상부에 배치되어 금강 및 주변 지역을 조망할 수 있다. 사비도성으로 진입하는 금강 일원의 통로를 방어하...
-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 있었던 통일 신라 시대의 행정 구역. 백제가 멸망한 뒤 통일 신라 시대인 686년(신문왕 6)에 백제의 왕도였던 사비(泗沘)[지금의 충청남도 부여군 일대]에 소부리군(所夫里郡)이 설치되었다....
-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송국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군. 부여 송국리 유적에서는 돌널무덤, 돌뚜껑움무덤, 독무덤 등 총 17기의 청동기 시대 무덤이 확인되었다. 이 중 송국리 52지구에서는 돌널무덤 4기, 돌뚜껑움무덤 2기, 독무덤 2기 등 총 8기의 무덤이 조사되었다. 송국리 52지구는 송국리 유적 남단의 야트막한 독립 구릉 정상부인데, 주변 조망이 탁월하고 무덤만 집중적으로...
-
충청남도 부여군 남면 송학리에 있던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복합 유적. 송학리 유적은 홍산-구룡 간 도로 확장 및 포장 공사 사업으로 확인된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복합 유적이다. 2004년 고려대학교 고고환경연구소에 의하여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발굴 조사 결과 유적은 2개의 지점으로 나뉘는데, 송학리 ‘가’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 수전, 백제 시대 대벽건물지...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 백마강 변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수북정(水北亭)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과 규암면을 연결하는 백제대교의 서쪽 남단에 있다. 양주목사를 지낸 김흥국(金興國)[1557~1623]이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에 내려와 살면서 지었고, 김흥국의 호를 따서 ‘수북정(水北亭)’이라 하였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00호로 지정되었...
-
충청남도 부여군 옥산면 수암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물 산포지. 수암리 자그만골 유적은 충청남도 부여군 옥산면 수암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물 산포지이다. 2001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실시한 부여 지역 백제 고분 정밀 지표 조사를 통하여 유적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주변에 있는 수암리 문녕기 유물산포지, 부여 수암리 중근세 묘지 유적의 청동기 시대 주거지 등과 연계되어 일대 청...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의병. 순성걸(荀成傑)[?~1592]의 본관은 홍산(鴻山)이다. 홍산[현 부여군 홍산면]에서 태어나 조헌(趙憲)[1544~1592]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선조 때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스승 조헌이 의병을 일으키자 순성걸은 박혼(朴渾) 등과 함께 의진에 가담하였다....
-
조선 전기 부여 출신의 문신. 순한량(荀漢良)[?~?]의 본관은 홍산(鴻山)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하황리와 세도면 사산리 경계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 시랭이 산성은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하황리 남쪽에 동서 방향으로 높게 솟아 있는 사랑산 정상에 축조된 테뫼식 토축 산성이다....
-
조선 후기 부여 지역에서 발생한 이몽학의 난 진압에 공을 세운 문신. 신경행(辛景行)[1547~1623]의 본관은 영산(靈山)이며, 자는 백도(伯道), 호는 조은(釣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신자전(辛自全)이고, 할아버지는 신세주(辛世胄)이다. 아버지는 신질(辛垤)이고, 어머니는 영동 김씨(永同 金氏)이다. 부인은 최명강(崔命江)의 딸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백제 사비도성에서 건물과 유물에서 구현되었던 신선 세계. 백제 사비도성에는 아침저녁으로 신인(神人)이 서로 왕래하였다는 세 개의 산[삼산]이 있었다. 신인은 신선이면서 산신이기도 하다. 신인 즉 신선이 사는 곳은 인간 세계가 아닌 선경으로 이상적인 세계를 의미한다. 백제인은 신선이 사비도성을 선경으로 변모시키는 놀라운 힘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삼산뿐만 아니라 사비...
-
충청남도 부여군 옥산면 신안리 일대에 있는 청동기 시대에서 통일 신라 시대까지의 복합 유적. 신안리(新安里) 안동골 유적은 홍산-구룡 간 도로 확장 및 포장 공사 사업으로 확인된 청동기 시대에서 통일 신라 시대까지의 복합 유적이다. 고려대학교 고고환경연구소가 2004년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청동기 시대 주거지 1기, 돌널무덤 5기, 삼국 시대 백제 고분 3기, 통일...
-
백제 사비 시기 왕과 왕족의 묘역인 부여 왕릉원의 굴식 돌방무덤 구조를 기초로 한 무덤 형식. 능산리형 굴식 돌방무덤은 백제 후기형 굴식 돌방무덤이라고도 한다. 능산리형 굴식 돌방무덤의 전형이 확인되는 부여 능산리 고분군은 일제 강점기에 처음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2023년 현재 17기의 고분이 알려져 있다. 1915년 구로이타 가쓰미[黑板勝美]와 세키노 타다시[關野貞]에 의하여...
-
조선 전기에 편찬된 관찬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된 충청도 부여현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부여현(扶餘縣)은 1530년(중종 25)에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중수하여 편찬한 관찬 지리서이다. 충청도 부여현[충청남도 부여군의 옛 행정 구역]의 지리·풍속·인물 등 여러 측면이 종합적으로 수록되어 있다....
-
조선 후기 부여 지역에 은거하였던 문신. 심상정(沈尙鼎)[1680~1721]의 본관은 청송(靑松)이며, 자는 성응(聖凝), 호는 몽오재(夢悟齋)이다. 처음 이름은 심상엽(沈尙燁)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심준(沈僔)이고, 할아버지는 심지치(沈之治)이다. 아버지는 심집(沈楫)이고, 어머니는 유심(柳淰)의 딸로 본관은 전주 유씨(全州 柳氏)이다. 부인은 권지(權持)의 딸 안동 권씨(安東 權...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에 있었던 백제 시대 절터. 쌍북리 사지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에 있는 부여도서관과 부여여자고등학교 진입로 사이에 있었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에 있는 백제 시대 생활 유적. 쌍북리 유적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에서 확인된 생활 유적이다. 저습지가 많아 목간 등 목제 유물의 출토 빈도가 높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에 있는 백제 시대 폐사지. 쌍북리 폐사지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부소산 기슭이자 현 부여초등학교 일대에 자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왕족이자 화가. 아좌태자(阿佐太子)[?~?]는 사비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백제 제26대 성왕(聖王)이며, 아버지는 백제 제27대 위덕왕(威德王)으로, 위덕왕의 둘째 아들로 보기도 한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 597년(위덕왕 44) 4월 백제 왕이 왕자 아좌(阿佐)를 일본에 보내 조공을 하였다는 내용을 근거로 한다....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신. 안응로(安應魯)[1586~1628]의 본관은 광주(廣州)이며, 자는 몽여(夢與), 호는 취치(醉癡)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안자흠(安子欽)이고, 할아버지는 안사영(安士英)이다. 아버지는 형조정랑을 지낸 안묵지(安默智)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양화면 오량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 양화 오량리 고인돌(良化 五良里 고인돌)은 충청남도 부여군 양화면 소재지에서 북서쪽으로 약 2㎞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오량1리 오송대마을에 있다. 신광교회 뒤편의 소나무 숲 사이에 1기가 있으며, 나머지 2기는 정미소 기둥 받침, 그리고 시멘트 포장 도로 속에 묻혀 있다....
-
조선 후기에 편찬된 『여지도서』에 실린 충청도 부여현의 읍지. 『여지도서(輿地圖書)』 부여현(扶餘縣)은 18세기 중엽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성책(成冊)한 『여지도서』에 수록된 충청도 부여현의 읍지이다. 『여지도서』는 270여 년 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1486]을 기초로 하였으며, 호구(戶口)는 1759년 기묘장적(己卯帳籍)을 기준으로 작성되었다. 이를...
-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의 역사 시대에 대한 전반적인 개관. 부여 지역에 언제부터 인류가 거주하기 시작하였는지는 구체적이지 않다. 부여 지역에서는 외산면과 홍산면의 지표 조사를 통하여 구석기 시대 유물이 수습되었다. 외산면 반교리에서는 몸돌 1점이, 홍산면 좌홍리에서는 양날찍개 1점이 수습되었다. 신석기 시대의 유적도 마찬가지이다. 은산면과 규암면에 신석기 관련 유적이 수습되었다. 은...
-
조선 시대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 설치·운영되었던 교통·통신 및 숙박 시설. 역원(驛院)은 근대 이전 교통의 요지에 설치한 관영 교통·통신 시설 및 숙박 시설이다. 중앙과 지방, 지방과 지방 사이를 연결하여 공문서 전달, 관물 수송, 사신 왕래와 숙식 등의 편의 제공을 위하여 도로의 중요 지점에 설치되었다. 역(驛)은 공무로 지방을 다니는 관리에게 마필(馬匹)이나 필요한 물품을 공급...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관리. 연문진(燕文進)[?~?]은 백제 대성팔족(大姓八族)의 하나인 연씨(燕氏) 가문이다. 연씨는 웅진 천도 이후에 등장한 신진 세력이었으나, 478년(삼근왕 2) 연신이 해구의 반란에 연루되어 중앙 정치에서 배제되었다. 이후 497년(동성왕 19) 연돌이 병관좌평에 임명되면서 유력한 귀족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연씨 세력의 재지 기...
-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연화리에 있는 초기 철기 시대 무덤. 연화리 석관묘(蓮花里 石棺墓)는 1963년 연화리의 주민이 동검 4개를 국립박물관에 신고하면서 유적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으며, 이후 간단한 수습 조사만이 실시되었다....
-
충청남도 부여를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무신. 연회(燕會)[?~?]는 백제 대성팔족(大姓八族)의 하나인 연씨(燕氏) 가문 출신이다. 연씨는 웅진 천도 이후에 등장한 신진 세력이다. 478년(삼근왕 2) 연신이 해구의 반란에 연루되어 중앙 정치에서 배제되었다가 497년(동성왕 19) 연돌이 병관좌평에 임명되면서 유력한 귀족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529년(성왕 7) 고구려 안장왕...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염창리 도덕골에 있는 백제 시대 고분군. 염창리 도덕골 고분군은 백제 시대의 고분군으로 지표 조사 과정에서 총 3기의 분묘가 확인되었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부소산에 있는 2층 누각. 영일루(迎日樓)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부소산의 동쪽 봉우리에 있는 2층 누각이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0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변경되었다....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관리. 예군(禰軍)[613~678]의 성은 예씨(禰氏)이고, 자는 온(溫)이다. 웅진(熊津) 우이(嵎夷) 출신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예복(禰福), 할아버지는 예예(禰譽)이며, 아버지는 예선(禰善)이다. 모두 백제의 제1품 좌평(佐平)을 지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에는 이름이 전혀 보이지 않고, 다만 신라본기 문무왕 10년...
-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오덕리 오덕사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 오덕사 괘불탱은 화면 하단에 적힌 화기(畵記)에 의하면, 1768년(영조 44) 5월 유행(有幸) 등 10명의 승려 화가가 공동으로 제작하였다. 모두 17폭의 삼베를 이어 가로 560.8㎝, 세로 864㎝의 화면을 만들었으며, 여기에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불·아미타불·사천왕을 배치...
-
충청남도 부여군 옥산면 안서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 옥산 안서리 고인돌은 충청남도 부여군 옥산면 옥산초등학교에서 남쪽으로 약 100m 떨어진 해발 40m 내외의 구릉지에 있다....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관리. 왕변나(王辯那)[?~?]의 성은 왕씨(王氏)로 추정된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왕포리에 있는 백제 시대 생활 유적. 왕포리 60-7 일원 유적은 부여-논산 간 확포장공사 때 부여군 부여읍 왕포리 60-7번지 일원에서 확인된 백제 시대 생활 유적이다. 충청문화재연구원에 의하여 2000년 8월 31일부터 2001년 6월 26일까지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 결과 백제 사비 시기 건물지 1동, 수혈주거지 1기, 미상 수혈유구 1기 등이...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관리. 왕효린(王孝隣)[?~?]의 성은 왕씨(王氏)이며, 중국계 백제 관료로 추정된다....
-
660년 11월 5일부터 7일간 왕흥사잠성에서 백제부흥군이 신라군과 벌인 전투. 660년 7월 사비성이 함락되고 의자왕이 항복 의례를 행한 이후 백제 고지에서는 백제부흥운동이 일어났다. 9월 3일 소정방이 의자왕을 비롯하여 백제 왕족 및 백성들을 데리고 당으로 귀국하면서, 사비성에는 유인원과 군사 1만을 남겨 지키도록 하였다. 이에 백제부흥군은 사비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대대적인 공...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백제 시대의 청동제 사리합. 사리기의 봉안은 일정한 틀이 정해져 있지 않지만, 대체로 중첩되는 여러 겹의 용기 속에 사리를 안치한다. 사리를 탑 안에 넣을 때 여러 재료의 사리용기를 겹쳐서 사용하고, 안쪽으로 갈수록 귀한 재료로 만든다. 이때 바깥부터 청동제 사리합-은제 사리호-금제 사리병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청동제...
-
고려 후기 왜구들이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침입하여 약탈한 사건. 13세기부터 16세기까지 한국과 중국의 해안 지역에 주로 침입하여 약탈을 일삼았던 일본 해적을 총칭하여 왜구(倭寇)라고 한다. 왜구가 고려에 처음 침입한 것은 1223년(고종 10)이다. 이후 1392년(공양왕 4)까지 총 529회에 걸쳐 고려를 침략하였고 이 가운데 충청남도 지역을 침략한 것은 78회에 달하였다. 왜...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외리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 외리 산성(外里 山城)은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외리 서쪽에 솟아 있는 야산의 정상부에 있다. 테뫼식 토축산성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외리에 있는 백제 시대 폐사지. 외리 폐사지는 역사 기록에는 전해지지 않는 유적이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은 일본 고대 문화의 원류를 백제에 두었으며, 백제 문화에서 일본 고대 문화의 흔적을 찾고자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의 백제 유적을 조사하였다. 그 가운데 백제 사비기 사지(寺址) 조사는 1935년 부여진열관 내에 백제연구소가 설치되면서 활기를 띠었고, 외리...
-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무량사에 있는 조선 시대 승탑군. 외산 무량사 부도군(外山 無量寺 浮屠群)은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무량사에 있는 조선 시대 승탑들이다. 조선 후기에 들어와 각 사찰별로 승탑의 건립이 성행하면서 사찰 입구에 승탑들을 모아서 조성하는 경우 많았는데, 무량사의 승탑군도 같은 배경에서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외산 무량사 부도군은 2002년 6월 10...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용정리에 있는 백제 시대의 절터. 용정리사지(龍井里寺址)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의 동쪽 능산리 일원의 청마산과 월명산, 독쟁이골에 있는 청마산성의 입구에 있다....
-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 있었던 웅진도독부 소속 지방 행정 구역. 우이(嵎夷)는 고대 중국에서 해가 뜨는 동쪽 바닷가 이민족의 땅을 가리키는 이름이었는데, 당(唐)나라가 백제를 공격할 때 군사 진격로의 이름을 ‘우이도(嵎夷道)’라 하였다. 또한 백제를 멸망시킨 뒤에는 백제 땅에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와 13개 현(縣)을 설치할 때 백제왕도 사비 지역에 설치한 현을 우이현(嵎夷縣)이라...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리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 울성산성(蔚城山城)은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리의 부여 왕흥사지 뒤편에 있다. 야산 정상부에 축조된 테뫼식 토축산성이다. 남쪽 경사면 말단부에 왕흥사지가 있고 금강을 두고 부소산성과 마주한다. 사비도성으로 근접하는 북서쪽 일원의 길목을 방어하기 위하여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의 “660년(무열왕 7) 11월 5일...
-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 있었던 삼국 시대 당이 설치한 군정 기관.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정벌한 후 당나라는 백제 고토에 대한 직접 지배를 위하여 통치 기구를 설치하였다. 본래 5도독부를 두려고 하였으나 백제의 격렬한 부흥 운동의 전개로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로 단일화하였다. 신라가 672년에 사비 지역을 차지하여 소부리주를 설치함으로써 실질적인 기능은 정지되었으나 웅진도독부가 요동...
-
고려 후기 부여 보광사에서 활동한 승려. 원명국사(圓明國師)[1274~1338]의 속명은 김충감(金沖鑑)이고, 자는 절조(絶照), 법호는 설봉(雪峯)이다. 평양군(平陽君) 김영순(金永純)의 동생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원문리에 있는 초기 철기 시대 무덤 및 조선 시대 생활 유적. 원문리 164-12 유적은 부여군 규암 우회 도로 및 서천-서천IC 도로 건설 공사에 따른 발굴 조사에서 확인된 청동기 시대 및 조선 시대 유적이다. 충남문화재연구원에서 2005년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 조사 결과 초기 철기 시대 토광묘 1기와 조선 시대 주거지 1기, 조선 시대 이후 조성...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나복리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 월구리성(月九里城)은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나복리에 있다. 산 정상부와 북서 사면을 감싸는 내성, 중간성, 외성으로 이루어진 토축산성이다. 월구리성은 보기 드문 3중성으로, 성벽이 모두 동일 시기의 것인지는 정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월구리성은 북서쪽 은산면과 서쪽 내산면의 산간 지대를 거쳐 규암면...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에 있는 백제 시대 연못. 월함지는 부소산 동남쪽, 금성산 북쪽의 물이 모이는 곳에 있으며, 백제 시대 왕이 비빈(妃嬪)과 놀던 연못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
백제 제27대 왕. 위덕왕(威德王)[?~598]의 성은 부여(扶餘)이고, 이름은 부여창(扶餘昌)이다. 백제 제26대 왕인 성왕[재위 523~554]의 아들이고, 제28대 혜왕(惠王)[재위 598~599]의 형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시대 문신 류희택, 류전, 류경종의 유물. 1959년 진주 류씨(晉州 柳氏) 안간공파(安簡公派) 계열의 후손이 유희택(柳希澤), 유전(柳詮), 유경종(柳慶宗)의 묘를 경기도 안양시에서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가곡리로 이장하는 과정에서 출토된 유물로서 개인이 소장하고 있었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
조선 후기 부여 지역에 거주하였던 문신. 유계(兪棨)[1607~1664]의 본관은 기계(杞溪)이며, 자는 무중(武仲), 호는 시남(市南)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유함(兪涵)이고, 할아버지는 수안군수 유대경(兪大敬)이다. 아버지는 예빈시참봉 유양증(兪養曾)이고, 어머니는 남이신(南以信)의 딸 의령 남씨(宜寧 南氏)이다. 부인은 이산악(李山岳)의 딸 광주 이씨(廣州 李氏)이고, 아들은 유...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군사리 임천 유태사 묘에 위패가 봉안된 고려 전기 무신. 유금필(庾黔弼)[?~941]의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평산 유씨(平山 庾氏)와 무송 유씨(茂松 庾氏)의 시조이다. 아들은 유긍(庾兢)·유관(庾官)·유유(庾儒)·유경(庾慶)이며, 딸은 태조 왕건의 제9비인 동양원부인(東陽院夫人)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군사리에 있는 장군 유금필을 모시는 사당. 유금필(庾黔弼)[?~941]은 황해도 평산 출신으로 고려의 후삼국 통일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성흥산성실기」에 따르면, 진남장군으로 전라도 순천 지역에 머물던 유금필이 송악으로 돌아가다가 부여 가림성의 지역민들을 진휼하였고, 은덕을 잊지 못한 지역민들이 임천 지역에 사당을 세웠다고 한다. 유금필이 가림성에 주둔한...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신. 유대칭(兪大偁)[1565~1634]의 본관은 기계(杞溪)이며, 자는 경선(景宣)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유여림(兪汝霖)이고, 할아버지는 유진(兪縝)이다. 아버지는 유함(兪涵)이고, 어머니는 이희현(李希賢)의 딸 평창 이씨(平昌 李氏)이다. 형은 유대숙(兪大俶)·유대수(兪大脩)·유대경(兪大儆)·유대엄(兪大儼)이고, 동생은 유대우(兪大佑)이다. 부인은 한의(...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무신. 유동발(柳東發)[1609~?]의 본관은 문화(文化)이며, 자는 진백(震伯)이다. 아버지는 유계춘(柳繼春)이고, 형은 유동수(柳東秀)이다. 부인은 이숙(李潚)의 딸이다....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신. 유동수(柳東秀)[1579~1654]의 본관은 문화(文化)이며, 자는 수보(秀甫), 호는 노곡(老谷)이다. 아버지는 예빈시직장 유선민(柳先民)이고, 어머니는 김응상(金應祥)의 딸 언양 김씨(彦陽 金氏)이다. 부인은 해주 오씨(海州 吳氏)이다....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인. 유면증(兪勉曾)[1571~?]의 본관은 기계(杞溪)이며, 자는 상로(尙魯)이다. 판서(判書) 경안공(景安公) 유여림(兪汝霖)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유대엄(兪大儼)이고, 어머니는 평창 이씨(平昌 李氏)이다. 부인은 군수 서집의 딸 이천 서씨(利川 徐氏)이다....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신. 유명(柳蓂)[1548~?]의 본관은 문화(文化)이며, 자(字)는 서숙(瑞叔), 호는 죽정(竹亭)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유정휘(柳正徽)이고, 할아버지는 유응상(柳應祥)이다. 아버지는 유경지(柳敬智)이고, 형은 유봉(柳菶)이다. 아들은 유진춘(柳震春)이다....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신. 유명윤(兪命胤)[1629~1669]의 본관은 기계(杞溪)이며, 자는 윤보(胤甫)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수안군수 유대경(兪大儆)이고, 할아버지는 예빈시참봉 유양증(兪養曾)이다. 아버지는 이조참판 유계(兪棨)이고, 어머니는 이산악(李山岳)의 딸 광주 이씨(廣州 李氏)이다. 부인은 진주목사 윤형성(尹衡聖)의 딸 남원 윤씨(南原 尹氏)이고, 아들은 유상기(兪相...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열녀. 남원 윤씨(南原 尹氏)[?~?]의 아버지는 진주목사를 지낸 윤형성(尹衡聖)이고, 어머니는 이사민(李師閔)의 딸 전주 이씨(全州 李氏)이다. 이조참판 유계(兪棨)의 아들 유명윤(兪命胤)과 혼인하여 기계 유씨(杞溪 俞氏) 가문으로 출가하였다. 아들은 유상기(兪相基)이다....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인. 유명집(兪明集)[1665~1733]의 본관은 기계(杞溪)이며, 자는 여성(汝成), 호는 서주(西州)이다. 경안공(景安公) 유여림(兪汝霖)의 후손이다. 친아버지는 유담(兪橝)이고, 나중에 유권(兪權)의 양자로 들어갔다. 부인은 동래 정씨(東萊 鄭氏)이다. 시남(市南) 유계(兪棨)의 손자 유상기(兪相基)와 인척 관계이다. 기계 유씨(杞溪 兪氏)는 부여의...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의병장. 유봉(柳菶)[1546~1604]의 본관은 문화(文化)이며, 자는 성숙(盛叔), 호는 정재(定齋)·망기정(忘機亭)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유정휘(柳正徽)이고, 할아버지는 유응상(柳應祥)이다. 아버지는 유경지(柳敬智)이고, 아들은 유승춘(柳承春) 등이다....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효자. 유승춘(柳承春)[1567~1603]의 본관은 문화(文化)이며, 자는 순원(順元)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유응상(柳應祥)이고, 할아버지는 유경지(柳敬智)이다. 아버지는 유봉(柳菶)이고, 부인은 경주 김씨(慶州 金氏)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금암리에 있는 유진춘의 정려각. 유진춘 정려각(柳震春 旌閭閣)은 유진춘(柳震春)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효자 정려각이다. 유진춘은 1589년(선조 22) 태어났으며 자는 열원(悅元), 호는 옥봉(玉峯)이다. 정려각은 국가에서 충신·효자·열녀 등 모범이 되는 사람을 표창하고자 마을이나 집앞에 세우는 건물이다. 유진춘은 부모가 돌아가시자 3년간 시묘살이를...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인. 윤개(尹揩)[1634~1663]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자는 원례(元禮), 호는 치암(痴菴)이다. 대사성(大司成) 윤탁(尹倬)의 후손이며, 증조할아버지는 효렴(孝廉) 윤창세(尹昌世)이고, 할아버지는 전부(典簿) 윤희(尹熺)이다. 아버지는 감역(監役) 오로정(五老亭) 윤봉거(尹鳳舉)이고, 어머니는 무안 박씨(務安 朴氏)이다. 부인은 귀천(歸川) 이정...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효자. 윤광은(尹光殷)[1634~1705]의 본관은 칠원(漆原)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윤사영(尹仕榮)이고, 할아버지는 윤인(尹璘)이다. 아버지는 훈련원주부 윤익(尹翊)이고, 어머니는 김덕유(金德裕)의 딸 김해 김씨(金海 金氏)이다....
-
조선 후기 부여 지역의 열녀. 윤덕(閏德)[?~?]은 어렸을 때부터 효성으로 부모를 섬겼으며, 이순립(李順立)과 혼인한 뒤에는 시부모를 친부모처럼 정성으로 보살폈다. 스무 살 때 남편 이순립이 사망하자 지극히 슬퍼하며 장례를 치렀고, 목욕재계한 후 남편의 뒤를 따라 자결하였다. 이후 윤덕의 시신을 수습해 둔 곳에서 흰 기운 한 줄기가 위로 뻗쳐 하늘까지 닿았고, 사람들이 그러한 기...
-
조선 후기 부여 지역에 거주하였던 문신. 윤문거(尹文擧)[1606~1672]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자는 여망(汝望), 호는 석호(石湖)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윤돈(尹暾)이고, 할아버지는 윤창세(尹昌世)이다. 아버지는 대사간 윤황(尹煌)이고, 어머니는 성혼(成渾)의 딸 창녕 성씨(昌寧 成氏)이다. 부인은 선교랑 이전(李瑑)의 딸 평창 이씨(平昌 李氏)이고, 아들은 윤단(尹搏)·윤...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무신. 윤익(尹翊)[1615~1637]의 본관은 칠원(漆原)이며, 자는 경량(景亮)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윤기(尹祺)이고, 할아버지는 윤사영(尹仕榮)이다. 아버지는 윤인(尹璘)이고, 어머니는 박원당(朴元璫)의 딸 밀양 박씨(密陽 朴氏)이다. 부인은 김덕유(金德裕)의 딸 김해 김씨(金海 金氏)이고, 아들은 윤광은(尹光殷)이다....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장군. 윤충(允忠)[?~?]은 장군의 직책으로 부여에서 활동하였으나 성씨에 관하여는 자세히 알 수 없다....
-
조선 후기 부여 지역에 거주하였던 문신. 윤형성(尹衡聖)[1608~1676]의 본관은 남원(南原)이며, 자는 경임(景任), 호는 기기재(棄棄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내자시판관 윤청(尹淸)이고, 할아버지는 사옹원참봉 윤민신(尹民新)이다. 아버지는 승지 윤길(尹日+吉)이고, 어머니는 이세량(李世良)의 딸 전주 이씨(全州 李氏)이다. 부인은 이사민(李師閔)의 딸 전주 이씨(全州 李氏)이...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 의자왕의 왕비. 은고(恩古)[?~?]의 출신은 분명하지 않다. 의자왕 말기 사씨(沙氏) 세력의 위상으로 볼 때, 부여 지역을 기반으로 한 사씨 출신으로 추정된다....
-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대양리에 있는 도천사 창건 및 중건을 기록한 조선 후기의 비석. 은산 도천사 사적비(恩山 道泉寺 史蹟碑)는 도천사(道泉寺)의 창건 및 중건 내력을 기록한 사적비(事蹟碑)이다. 도천사는 백제 제31대 의자왕의 동생 도천군(道泉君)이 창건한 사찰이다. 도천사는 현재 터만 남아 있는데, 은산 도천사지 역시 충청남도 부여군 향토문화유산 제29호로 지정되었다. 은산...
-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대양리에 있는 조선 시대 절터. 은산 도천사지는 백제 의자왕 대로 창건 연기가 알려져 있지만, 은산 도천사지 내에 산포된 유물의 양상으로 보아 고려 후기에서 조선 후기까지 운영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상진의 묘와 묘비. 은산 이상진 묘 및 비(恩山 李尙眞 墓 및 碑)는 조선 후기 문신 이상진[1614~1690]의 묘와 묘비이다. 이상진의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자는 천득(天得), 호는 만암(晩庵)이며, 1645년(인조 23)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지평, 사간원 정언, 이조참판, 경상도관찰사, 이조판서, 우의정 등을 역임하...
-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경둔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홍윤성의 묘와 비. 은산 홍윤성 묘 및 비는 세조 대부터 성종 연간에 활동한 조선 전기 문신이자 공신 홍윤성의 묘와 신도비이다. 홍윤성[1425~1475]은 초명이 우성(禹成), 자는 수옹(守翁), 호는 영해(領海)이다. 1450년(문종 즉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 예조참의, 예조판서, 경상우도절제사, 좌의정, 영의정...
-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가중리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 은산당산성은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가중리 은산 별신당 뒤쪽에 솟아 있는 야산의 정상부를 이중으로 둘러싼 산성이다. 2000년 1월 11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15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기념물로 변경되었다....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고위 관료이자 장군. 은상(殷相)[?~?]은 649년 백제의 좌장(左將)으로서 신라를 공격하였다가 도살성(道薩城)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의 연혁, 지리, 인물, 산업, 문화, 풍속 따위를 기록한 책. 부여군 지역을 소개하는 읍지는 『삼국사기(三國史記)』[1145]로부터 시작된다. 『삼국사기』 지리지를 보면 가림군(加林郡) 조와 부여군(扶餘郡) 조에 삼국 시대와 통일 신라 시대 가림군과 부여군 지리 정보가 자세하게 수록되어 있다. 고려 시대의 경우 『고려사(高麗史)』 지리지에 정보가 담겨져 있고,...
-
조선 시대 임진왜란 당시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 일본의 침략에 맞서 전개된 의병 항쟁. 의병은 나라가 외적의 침입으로 위급할 때 자발적으로 조직된 군대이다. 의병운동(義兵運動)의 전개는 크게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일제 강점기로 나눌 수 있다. 임진왜란 기간 동안 부여 지역에서 의병운동이 일어난 사실은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부여 출신 또는 부여 지역과 관련된 인물들이 의병장 또는...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의열사의 건립과 제향 인물을 기록한 조선 후기의 비석. 의열사비(義烈祠碑)는 의열사(義烈祠)의 건립 과정과 의열사에 제향하는 인물에 대한 내용을 기록한 비이다. 의열사는 1575년(선조 8) 부여현감 홍가신(洪可臣)이 건립한 사당이며, 1578년(선조 11) 사액받았다. 의열사에서는 부여 지역 출신인 백제의 3충신, 고려의 이존오(李存吾), 조...
-
백제 제31대 왕. 의자왕(義慈王)[?~660]의 성은 부여(扶餘)이고, 이름은 부여의자(扶餘義慈)이다. 백제 제30대 왕인 무왕(武王)[재위 600~641]의 맏아들이며, 부여융(扶餘隆)[615~682]·부여효(扶餘孝)·부여풍(扶餘豊) 등의 아버지이다....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관료이자 장군. 의직(義直)[?~?]은 백제 사비 도읍기에 중앙군의 장군으로 활동하였으나 성씨에 대하여는 자세히 알 수 없다....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의병. 이강(李日+工)[1558~1592]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강지(絳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평안도관찰사를 지낸 이세응(李世應)이고, 할아버지는 대사간 이림(李霖)이다. 아버지는 이창형(李昌亨)이고, 어머니는 풍양 조씨(豐壤 趙氏)이다. 부인은 판관 오세인(吳世仁)의 딸 하동 오씨(河東 吳氏)이고, 아들은 이순성(李純誠)·이순억(李純億)이다....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인. 이경술(李景述)[1570~1640]의 본관은 함평(咸平)이며, 자는 비승(丕承), 호는 봉촌(鳳村)이다. 아버지는 선무랑 이돈(李惇)이다....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신. 이경여(李敬輿)[1585~1657]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직부(直夫), 호는 백강(白江)·봉암(鳳巖)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구수(李耉壽)이고, 할아버지는 이극강(李克綱)이다. 아버지는 이유록(李綏祿)이고, 어머니는 송제신(宋濟臣)의 딸 진천 송씨(鎭川 宋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윤승훈(尹承勳)의 딸 해평 윤씨(海平 尹氏)이고, 두 번째 부...
-
고려 후기 부여의 명승지를 유람하고 기행문을 남긴 성리학자이자 문신. 이곡(李穀)[1298~1351]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초명은 이운백(李芸白), 자는 중부(仲父), 호는 가정(稼亭),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한산 이씨(韓山 李氏) 시조인 이윤경(李允卿)의 6대손이다. 할아버지는 증판도판서(贈版圖判書) 이창세(李昌世)이다. 아버지는 증도첨의찬성사(贈都僉議贊成事) 이자성(李...
-
조선 후기 부여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이관민(李寬民)[?~?]은 1579년(선조 30)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부여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조익(趙翊)이 지은 『공산일기(公山日記)』에 따르면, 이관민은 한양에서 벼슬살이를 하다가 정유재란 당시 홍산(鴻山)[현 부여군 홍산면]에 머물고 있었다. 이관민은 왜군이 재침하였다는 소식을 듣자 수천 명의 의병을 모아 한양을 지키기 위하여 북상하...
-
조선 후기 부여 지역의 효자. 이덕린(李德麟)[?~?]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호는 금곡(金谷)이다. 의안군(義安君) 이화(李和)의 후손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점리와 장암면 원문리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 이목치산성(梨木峙山城)은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북쪽과 장암면 남쪽을 경계 짓는 학산 줄기의 서쪽 봉우리에 있다. 높이 160m에 축조된 테뫼식 토축산성이다....
-
조선 후기 부여 지역에서 민란을 일으킨 반란군 수장. 이몽학(李夢鶴)[?~1596]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가계에 대해서는 자세히 전하지 않으며, 왕족의 서얼 출신으로 서울에 살았으나 품행이 좋지 않아 아버지에게 쫓겨나 충청도와 전라도 등지를 전전하였다고 전한다. 또한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조경남(趙慶男)이 쓴 『난중잡록(亂中雜錄)』에는 “이몽학이 본래 흉하고 교활한 무리로서...
-
1596년 이몽학의 주도로 부여 지역에서 발생한 반란 사건. 이몽학의 난은 임진왜란 중에 발생한 크고 작은 반란 사건 가운데 하나이다. 홍산(鴻山)[현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에서 시작된 반란군은 1596년(선조 29) 7월 홍산, 임천, 정산 등을 함락시키고 홍주로 진격하였으나, 관군의 대처로 홍주성 점령에 실패하였다. 이후 반란군은 전열을 잃었고, 주동자였던 이몽학(李夢鶴)은...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인. 이문상(李文祥)[1712~1789]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정보(定甫)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민적(李敏迪)이고, 할아버지는 판서 이사명(李師命)이다. 아버지는 이의지(李毅之)이고, 어머니는 나정좌(羅廷佐)의 딸 나주 나씨(羅州 羅氏)이다. 큰아버지 이희지(李喜之)의 양자로 입적되었으며, 부인은 성재(成梓)의 딸 창녕 성씨(昌寧 成氏)이다....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신. 이봉명(李鳳鳴)[1682~1746]의 본관은 서천(舒川)이며, 자는 방서(邦瑞), 호는 구포(九苞)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익형(李益亨)이고, 할아버지는 이석빈(李碩賓)이다. 아버지는 이현(李玹)이고, 어머니는 최송수(崔松秀)의 딸 탐진 최씨(耽津 崔氏)이다. 부인은 심량(沈樑)의 딸 청송 심씨(靑松 沈氏)이다....
-
조선 후기 부여 지역의 열녀. 임천 조씨(林川 趙氏)[1661~1722]는 부사 조현기(趙顯期)의 딸이다. 대사헌 이민적(李敏迪)의 아들 이사명(李師命)과 혼인하여 전주 이씨(全州 李氏) 가문으로 출가하였다. 아들은 이희지(李喜之)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국립부여박물관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인 목은 이색의 조선 후기 초상.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의 본관은 한산이다.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야은(冶隱) 길재(吉再)와 더불어서 ‘고려 3은(三隱)’으로 불린다. 원나라의 국자감(國子監)에서 생원으로 지내면서 성리학을 연구하였다. 아버지의 상을 당하면서 고려로 귀국하게 되었고, 이...
-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 설치되었던 조선 전기 행정 구역. 석성현은 현재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일대에 위치한 행정 구역이었고, 이산현은 현재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위치한 군현이었다. 두 군현은 백제 때부터 다른 영역으로 설정되어 각기 다른 행정 영역을 이루고 있었는데, 1414년(태종 14) 전국 지방 군현의 통폐합 과정에서 통합 대상이 되어 이산현의 이(尼) 자와 석성현의 성(...
-
조선 후기 부여 지역에서 발생한 이몽학의 난 진압에 공을 세운 무신. 1596년(선조 29) 7월 홍산(鴻山)[현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에서 이몽학(李夢鶴)이 반란을 일으켜 홍산과 임천에서 군수와 현감을 사로잡은 후 청양과 예산까지 함락하고 8월 3일 홍주성[현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을 포위하였다. 이수담(李壽聃)[?~?]은 복병장(伏兵將)으로 참전하여 이몽학과 함께 반란을 주...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신. 이용만(李容萬)[1736~1787]의 본관은 전의(全義)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우춘(李宇春)이고, 할아버지는 이진성(李晉聖)이다. 아버지는 이규문(李揆文)이고, 어머니는 안동 김씨(安東 金氏)이다. 부인은 변종운(邊宗運)의 딸 황주 변씨(黃州 邊氏)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옥곡리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이이명(李頥命)[1658~1722]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지인(智仁) 또는 양숙(養叔), 호는 소재(疎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유록(李綏祿)이고, 할아버지는 영의정 이경여(李敬輿)이다. 아버지는 대사헌 이민적(李敏迪)이고, 어머니는 황일호(黃一皓)의 딸 창원 황씨(昌原 黃氏)이다. 부인은 판서 김만중(金萬...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신. 이일삼(李日三)[1626~1700]의 본관은 서천(舒川)이며, 자는 진여(晉汝), 호는 시서(市西) 또는 성오(省吾)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대의(李大義)이고, 할아버지는 이돈임(李敦臨)이다. 아버지는 이복형(李復亨)이고, 어머니는 백광원(白光遠)의 딸 수원 백씨(水原 白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이충민(李忠民)의 딸 연안 이씨(延安 李氏)이고, 두 번...
-
고려 후기 부여 출신의 문신. 이존오(李存吾)[1341~1371]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순경(順卿), 호는 석탄(石灘)·고산(孤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내시흥위위장사(內侍興威衛長史) 이예(李芮)이고, 할아버지는 봉상대부감찰사장령(奉常大夫監察司掌令) 이손보(李孫寶)이고, 아버지는 승봉랑사재시승(承奉郞司宰寺丞) 이길상(李吉祥)이다. 아들은 좌명공신이자 태종 묘정배향공신인 이...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무신. 이중신(李重信)[1611~?]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다. 아버지는 선전관을 지낸 이조성(李朝晟)이고, 어머니는 이구한(李久漢)의 딸 전주 이씨(全州 李氏)이다. 아들은 이장협(李長莢)·이장명(李長蓂)이다....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무신. 이지례(李之禮)[1545~1592]의 본관은 단양이며, 자(字)는 만혜(漫兮)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사헌부집의 이맹지(李孟智)이고, 할아버지는 사헌부장령 이겸(李謙)이다. 아버지는 이문호(李文虎)이고, 어머니는 태원 선우씨(太原 鮮于氏)이다....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신. 이함림(李咸臨)[1564~1596]의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자는 응오(應五)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세헌(李世獻)이고, 할아버지는 이훈(李勳)이다. 아버지는 이대인(李大仁)이다....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신. 이현조(李玄祚)[1654~1710]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계상(啓商), 호는 경연당(景淵堂)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조판서 이수광(李睟光)이고, 할아버지는 영의정 이성구(李聖求)이다. 아버지는 이석규(李碩揆)이고, 어머니는 민성복(閔聖復)의 딸 여흥 민씨(驪興閔氏)이다. 부인은 김귀만(金龜萬)의 딸 안동 김씨(安東 金氏)이다....
-
조선 전기 부여 지역에 은거한 문신. 이흥의(李興儀)[1409~?]의 본관은 서천(舒川)이며, 서천 이씨 부여 입향조이다. 부인은 홍윤성(洪允成)의 누이 회인 홍씨(懷仁 洪氏)이다....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인. 이희지(李喜之)[1681~1722]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사복(士復) 또는 양백(陽伯), 호는 응재(凝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경여(李敬輿)이고, 할아버지는 이민적(李敏迪)이다. 아버지는 판서 이사명(李師命)이고, 어머니는 조현기(趙顯期)의 딸 임천 조씨(林川 趙氏)이다. 부인은 윤헌경(尹憲卿)의 딸 파평 윤씨(坡平 尹氏)이다....
-
조선 후기 부여 지역의 열녀. 연일 정씨(延日 鄭氏)[?~?]는 동지중추부사 정만해(鄭萬楷)의 딸이다. 판서 이사명(李師命)의 아들 이희지(李喜之)[1681~1722]와 혼인하여 부여의 전주 이씨(全州 李氏) 가문으로 출가하였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현북리에 있는 백제 시대 절터. 임강사지(臨江寺址)는 절의 이름이나 유래가 전해지지 않는 백제 시대의 절터이며, 임강사지가 있는 마을 이름인 ‘인갱’을 따서 ‘임강사지’라 하였다. 인갱마을은 지금은 작은 마을이지만,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역이 설치될 정도로 중요한 곳이었다. 임강사지는 1982년 8월 3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3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
-
조선 후기 부여 지역에서 발생한 이몽학의 난 진압에 공을 세운 무신. 임득의(林得義)[1558~1612]의 본관은 평택(平澤)이며, 자는 자방(子房)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북병사 임준(林畯)이고, 할아버지는 좌랑 임정수(林貞秀)이다. 아버지는 강계부사 임식(林植)이고, 어머니는 최제운(崔霽雲)의 딸 해주 최씨(海州 崔氏)이다. 부인은 민서남(閔恕男)의 딸 여흥 민씨(驪興 閔氏)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일대에 있었던 고려 시대 행정 구역. 임천 지역은 통일 신라 이래로 가림군(嘉林郡)이라 불리다가 고려 시대인 995년(성종 14)에 임주(林州)로 개편되면서 자사(刺史)가 설치되었다. ‘임주’라는 명칭이 995년에 처음 등장하였다. 그 후 1018년(현종 9)에 다시 가림현으로 바뀌었고, 1315년(충숙왕 2)에 지임주사(知林州事)로 승격되었다....
-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여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벌어진 전쟁. 임진왜란(壬辰倭亂)은 1592년(선조 25) 4월 일본군의 부산진 상륙부터 1598년(선조 31) 11월 노량해전까지 7년 동안 조선과 일본, 명 사이에 일어난 동아시아 국제 전쟁을 말한다. 부여 지역의 경우 임진왜란 기간 동안 석성면 석성리에 있는 석성향교(石城鄕校)가 소...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정림사지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유계의 저서를 판각한 목판. 칠산서원은 1687년(숙종 13)에 건립되어 1697년(숙종 23)에 사액을 받은 서원으로 유계(俞棨)[1607~1664]를 배향하고 있다. 유계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무중(武仲), 호는 시남(市南)이다. 예학과 사학에 정통하였으며, 송시열·송준길·윤선거·이...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지역에 있었던 조선 시대 행정 구역. 조선시대 인문 지리서인 『택리지(擇里志)』를 살펴보면 임천군은 성주산(聖住山) 남쪽에 위치한 고을로 서천(舒川)·한산(韓山)과 함께 모시를 가꾸기 알맞은 곳이며 모시가 지역의 특산물로서 전국에서 제일인 지역이라고 하였다. 또한 강과 바다 사이에 있었기 때문에 교통이 편리하며 금강을 사이에 두고 전라도와 인접한 곳이라고 설...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군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임천군 관아 터. 임천군관아지는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군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임천군 관아가 있었던 터이다.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704년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시대 임천군 관아의 건물 현황은 『여지도서(輿地圖書)』 공해(公條) 조에 객사 28칸, 사후청(伺候廳) 3칸, 내아사(內衙舍) 9칸, 봉우헌(奉憂軒)...
-
백제 위덕왕이 죽은 왕자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세운 원찰. 사적 부여 왕흥사지(扶餘 王興寺址)는 부소산 서북쪽 백마강 건너편 울성산성 남쪽, 일명 왕안마을 일대에 있다. 백제 사비 도읍기의 대표적인 가람 터이다. 1934년 ‘王興(왕흥)’ 글자가 새겨진 고려 시대 기와와 석조불좌상, 토기 등이 발견되어 백제 왕흥사일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이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2000~2015...
-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북고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군. 장암 북고리 고인돌은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약 4.4㎞ 떨어진 북고리 월촌마을 북쪽의 낮은 구릉 정상부에 있다. 구릉 전면으로 북고천이 흘러 북쪽으로 약 1㎞ 떨어진 지점에서 금강과 합류한다....
-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점상리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 장암 점상리산성(場岩 店上里山城)은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점상리 서쪽의 토성봉(土城峯)에 축조된 테뫼식 토축산성이다. 북쪽으로 사비도성의 서남쪽에 자리한 남면 충적지와 접하고, 남쪽으로 장암면과 충화면을 관통하는 산간 통로와 접한다. 따라서 사비도성 서남쪽 일원의 산간 길목 초입 방어를 위하여 건립된 것으로 여겨진다. 장암...
-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정암리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 장암산성(場岩山城)은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정암리에 있는 테뫼식 토축산성이다. 정암1리 남쪽 야산 정상부에 있다. 장암산성은 북쪽으로 금강 건너 사비도성의 남쪽에 해당하는 왕포리의 대왕포와 마주한다. 금강 일대가 조망 가능한 곳이어서, 사비도성 남쪽 일원을 방어하기 위하여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
조선 후기 부여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 장응기(張應起)[?~?]의 호는 한계(寒溪)이다. 장응기는 부여 지역에 세거하면서 학문을 전수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장응기는 경전에 매우 밝고 학당을 열어 생도(生徒)들을 가르치는 일을 열심히 하여 문하에서 다수의 선비가 배출되었다. 또한 효도와 우애를 행실의 근본으로 삼아 여러 번 관직 추천장에 이름이 올랐다....
-
조선 후기 부여 지역에서 발생한 이몽학의 난 진압에 공을 세운 의병장. 장의용(張義龍)[1573~1596]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부여 출신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장하리 사지(長蝦里 寺址)는 보물로 지정된 부여 장하리 삼층석탑 주변의 절터이다. 사지의 이름이 ‘한산사지’로도 알려져 있으나 관련 문헌은 확인되지 않는다. 2004년 12월 22일 부여군 향토문화유산 제69호로 지정되었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저석리에 있는 백제 시대 고분군. 저석리 고분군(楮石里 古墳群)은 백제 시대의 고분군으로 총 10기의 분묘가 확인된다. 저석리 고분군에서 확인되는 분묘 중 벽돌덧널무덤은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확인되는 벽돌무덤의 조영 재료인 벽돌로 조성된 특징을 보이고 있으며, 나머지는 돌덧널무덤 계통의 분묘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저석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군. 저석리 석관묘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저석리와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분강리 경계 지역에 있다. 지리적으로 금강 변에 늘어선 산지의 일부로, 해발 60~70m에 해당하는 구릉 정상부를 중심으로 저석리 석관묘가 있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국립부여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박신룡의 복식과 요대. 전 박신용장군 의대(傳 朴信龍將軍 衣帶)는 조선 후기 무신인 박신용(朴信龍)과 관련되었다는 복식 4점이다. 박신용은 1627년 정묘호란(丁卯胡亂)에서 후금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고, 전란 과정에서 시신조차 찾지 못하였다. 그래서 박신용이 입었던 복식과 신발로 묘소를 만들어서 매장하였다고 전해진...
-
조선 전기 부여 출신의 문신. 전득우(田得雨)[?~?]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아버지는 전주(田柱)이다. 부인은 정씨(鄭氏)이고, 아들은 판중추원사 전흥(田興)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봉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무신 전득우의 묘. 전득우묘(田得雨墓)는 조선 전기 무신 전득우(田得雨)의 묘이다. 전득우는 본관이 남양(南陽)이며, 아버지 전주(田柱)는 고려가 망할 때 조선의 건국을 반대하여 공주로 유배되었다. 전득우의 아들 전흥(田興)은 태종 즉위 이후 원종공신에 녹훈되었으며, 세종 대에도 의금부제조, 형조참판 등을 지냈다. 1427년(세종 9...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인. 전석규(田錫圭)[1577~1669]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자는 사수(士受), 호는 한호(閒湖)이다. 아버지는 주부(主簿) 전탄(田坦)이다....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신. 전윤량(田允良)[?~1597]의 본관은 담양(潭陽)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전흡(田洽)이고, 할아버지는 전만복(田萬福), 아버지는 전학령(田鶴齡)이다. 부인은 부여 임씨(扶餘 林氏)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정각리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효자. 전한로(田漢老)[?~?]의 본관은 담양(潭陽)이다. 아버지는 선무랑으로 이인도승(利仁道丞)을 지낸 전화(田和)이고, 어머니는 중랑장 황보린(皇甫璘)의 딸 영천 황보씨(永川 皇甫氏)이다. 부인은 숙부(叔父)인 승의부위 김경수(金敬修)의 딸 광주 김씨이다. 자식으로는 아들 3명이 있다....
-
조선 전기 부여 출신의 문신. 전흥(田興)[1376~1457]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할아버지는 전주(田柱)이고, 아버지는 형조참의 전득우(田得雨)이다. 어머니는 정씨(鄭氏)이다. 아들은 전가생(田稼生), 전조생(田稠生), 전수생(田穗生), 전동생(田秱生) 등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정동리와 자왕리에서 확인된 백제 시대 복합 유적. 정동리 유적(井洞里 遺蹟)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의 동북쪽에 있는 능선의 정상과 사면에서 확인된 복합 유적이다. 백제 사비 시기 주거지와 건물지, 돌방무덤과 독무덤 등이 확인되었다....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무신. 정득열(鄭得說)[1565~1592]의 본관은 하동(河東)이며, 자는 군석(君錫)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승염(鄭承廉)이고, 할아버지는 정인국(鄭仁國)이다. 아버지는 정희영(鄭希永)이고, 어머니는 전주 이씨(全州 李氏)이다. 부인은 강종경(姜宗慶)의 딸 진주 강씨(晉州 姜氏)이고, 아들은 정택뢰(鄭澤雷)이다....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신. 정시형(鄭時亨)[1619~1699]의 본관은 광주(光州)이며, 자는 숙하(叔夏), 호는 반주(盤州)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연(鄭演)이고, 할아버지는 정보문(鄭保門)이다. 아버지는 군수 정유(鄭維)이고, 어머니는 박한(朴澣)의 딸 함양 박씨(咸陽 朴氏)이다. 부인은 유동발(柳東發)의 딸 문화 유씨(文化 柳氏)이다. 형은 정시원(鄭時元)이고, 동생은 정시...
-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정암리와 북고리에 걸쳐 있는 백제 시대 산성. 정암산성(亭岩山城)은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의 정암리, 북고리에 걸쳐 있는 테뫼식 산성이다. 정암산성은 북쪽으로 금강과 접하고, 왕포리의 대왕포와 마주한다. 금강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금강을 통하여 진입하는 사비도성 남쪽 일원을 방어하기 위하여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신. 정언욱(鄭彦郁)[1713~1787]의 본관은 동래(東萊)이며, 자는 사문(士文), 호는 퇴어(退漁)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유석(鄭有錫)이고, 할아버지는 정관주(鄭觀周)이다. 아버지는 정용서(鄭龍瑞)이고, 어머니는 권이정(權以廷)의 딸 안동 권씨(安東權氏)이다. 부인은 심우적(沈禹績)의 딸 청송 심씨(靑松沈氏)이다....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신. 정인(鄭仁)[1741~1794]의 본관은 동래(東萊)이며, 자는 도심(道心), 호는 석헌(石軒)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진주(鄭震周)이고, 할아버지는 정창서(鄭昌瑞)이다. 아버지는 정언운(鄭彦運)이고, 어머니는 홍중량(洪重亮)의 딸 풍산 홍씨(豊山 洪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김응징(金應徵)의 딸 안동 김씨(安東 金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권상흠(權尙...
-
조선 전기 부여 출신의 문신. 정인지(鄭麟趾)[1396~1478]의 본관은 하동(河東)이며, 자는 백저(伯雎), 호는 학역재(學易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익(鄭翊)이고, 할아버지는 정을귀(鄭乙貴)이다. 아버지는 정흥인(鄭興仁)이고, 어머니는 진천의(陳千義)의 딸이다. 첫 번째 부인은 조후(趙侯)의 딸 한양 조씨(漢陽 趙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이휴(李携)의 딸 경주 이씨(慶州...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효자. 정천세(鄭千世)[1609~1619]의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행충무위사과 정희영(鄭希永)이고, 할아버지는 사천현감을 지낸 정득열(鄭得說)이다. 아버지는 정택뢰(鄭澤雷)이고, 어머니는 정사경(鄭思敬)의 딸 동래 정씨(東萊 鄭氏)이다. 동생은 정만세(鄭晩世)·정계세(鄭繼世)·정수세(鄭壽世)이다....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지사. 정택뢰(鄭澤雷)[1585~1619]의 본관은 하동(河東)이며, 자는 휴길(休吉), 호는 화강(花岡)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인국(鄭仁國)이고, 할아버지는 정희영(鄭希永)이다. 아버지는 사천현감 정득열(鄭得說)이고, 어머니는 강종경(姜宗慶)의 딸 진주 강씨(晉州 姜氏)이다. 부인은 정사경(鄭思敬)의 딸 동래 정씨(東萊 鄭氏)이고, 아들은 정천세(鄭千世)·...
-
조선 후기 부여 지역의 열녀. 동래 정씨(東萊 鄭氏)의 아버지는 정사경(鄭思敬)이다. 사천현감을 지낸 정득열(鄭得說)의 아들 정택뢰(鄭澤雷)[1585~1619]와 혼인하여 하동 정씨(河東 鄭氏) 집안으로 출가하였다. 아들은 정천세(鄭千世)·정만세(鄭晩世)·정계세(鄭繼世)·정수세(鄭壽世)이다....
-
조선 전기 부여 지역에 거주한 문신. 정흥인(鄭興仁)[1363~1436]의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지연(鄭芝衍)이고, 할아버지는 정익(鄭翊)이다. 아버지는 정을귀(鄭乙貴)이고, 어머니는 민계창(閔季昌)의 딸 여흥 민씨(驪興閔氏)이다. 부인은 진천의(陳千義)의 딸 흥덕 진씨(興德 陳氏)이다. 아들은 정인지(鄭麟趾), 정인종(鄭麟踵), 정인각(鄭麟角)이다....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효자. 조경성(趙景星)[1606~1671]의 본관은 평양(平壤)이며, 자는 순서(舜瑞)이다. 아버지는 조엄(趙渰)이고, 어머니는 경주 이씨(慶州 李氏)이다. 부인은 순흥 안씨(純興 安氏)이다....
-
조선 후기 부여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조광형(趙光亨)[1606~1682]의 본관은 풍양(豐壤)이며, 자는 군실(君實), 호는 낙수(樂叟)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조덕기(趙德期)이고, 할아버지는 조응록(趙應祿)이다. 아버지는 전주부윤 조방직(趙邦直)이고, 어머니는 박준현(朴峻賢)의 딸 밀양 박씨(密陽 朴氏)이다. 부인은 이장(李檣)의 딸이다....
-
조선 후기 부여 지역의 열녀. 청주 한씨(淸州 韓氏)[1635~1673]의 아버지는 장령을 지낸 한진(韓縝)이고, 어머니는 이두망(李斗望)의 딸 광주 이씨(光州 李氏)이다. 동생은 사간을 지낸 한태동(韓泰東)이고,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仁顯王后)가 외손녀이다. 청주 한씨는 좌랑 조인형(趙仁亨)의 아들 조귀중(趙貴中)[1634~1671]과 혼인하여 풍양 조씨(豐壤 趙氏) 문중으로 출...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신. 조박(趙璞)[1577~1650]의 본관은 풍양(豊壤)이며, 자는 숙온(叔薀), 호는 석곡(石谷)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조세찬(趙世贊)이고, 할아버지는 조경(趙硬)이다. 아버지는 조희윤(趙希尹)이고, 어머니는 성순원(成順元)의 딸이다. 부인은 홍준(洪遵)의 딸 남양 홍씨(南陽 洪氏)이다. 아들은 조전소(趙全素)·조중소(趙重素)·조견소(趙見素)이다....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신. 조방직(趙邦直)[1574~1637]의 본관은 풍양(豐壤)이며, 자는 숙청(叔淸), 호는 수죽(脩竹)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조세헌(趙世獻)이고, 할아버지는 조덕기(趙德期)이다. 아버지는 풍덕군수 조응록(趙應祿)이고, 어머니는 조극근(趙克勤)의 딸 광주 조씨(廣州 趙氏)이다. 부인은 박준현(朴峻賢)의 딸 밀양 박씨(密陽 朴氏)이다....
-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 왕조 시기의 충청남도 부여 지역 역사. 조선 시대(朝鮮 時代) 지방 행정 제도는 1413년(태종 13)에 8도 체제가 확립되었다. 각 도 아래에는 330여 개의 부·목·군·현이 설치되었으며, 각 읍격에 맞게 부윤·대도호부사·목사·도호부사·군수·현령·현감이 파견되었다. 충청도는 고려 시대에 양광도(楊廣道)였다가 8도 체제 정비 과정에서 충청도로 명칭...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신. 조성복(趙聖復)[1681~1723]의 본관은 풍양(豊壤)이며, 자는 사극(士克), 호는 퇴수재(退修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목사 조박(趙璞)이고, 할아버지는 금구현령 조견소(趙見素)이다. 아버지는 조시채(趙始采)이고, 어머니는 최득일(崔得一)의 딸이다. 부인은 변세구(邊世耉)의 딸 황창 변씨(黃昌 邊氏)이다....
-
조선 전기 부여 출신의 문신. 조세철(趙世哲)[1477~?]의 본관은 풍양(豐壤)이며, 자는 국언(國彦)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조개평(趙開平)이고, 할아버지는 조후지(趙厚之)이다. 아버지는 충청도병마우후를 지낸 조익희(趙益禧)이고, 어머니는 정득훤(鄭得萱)의 딸이다. 부인은 허규(許揆)의 딸이다....
-
고려 후기 부여 지역에 은거한 문신. 조신(趙愼)[?~?]의 본관은 풍양(豐壤)이며, 초명은 조사렴(趙思廉)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조정(趙晶)이고, 할아버지는 조계령(趙季鴒)이다. 아버지는 조염휘(趙炎暉)이고, 어머니는 손원계(孫元桂)의 딸 밀양 손씨(密陽 孫氏)이다. 부인은 이암(李嵒)의 딸 고성이씨(固城李氏)이고, 아들은 조안평(趙安平)·조개평(趙開平)이다. 형은 조사충(趙思忠)...
-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점상리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 조신의 묘. 조신의묘는 고려 말에 회양부사를 지낸 문신 조신(趙愼)의 묘이다. 조신의 본관은 풍양(豐壤)이며, 본명은 조사렴(趙思廉)이다. 1368년(공민왕 17) 조신의 형 조사공이 신돈을 살해하려는 모의를 꾸미다 발각되어 죽임을 당하자 조사렴은 ‘조신’으로 이름을 바꾸고 부여 지역에 은거하였다. 조신은 부여 임천면(林川面)에...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신. 조응록(趙應祿)[1538~1623]의 본관은 풍양(豊壤)이며, 자는 경수(景綏), 호는 죽계(竹溪)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조익희(趙益禧)이고, 할아버지는 조세헌(趙世獻)이다. 아버지는 조덕기(趙德期)이고, 어머니는 강지(姜漬)의 딸이다. 첫 번째 부인은 유윤종(柳胤宗)의 딸 문화 유씨(文化 柳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조극근(趙克勤)의 딸 광주 조씨(廣...
-
조선 전기 부여 지역에 세거한 문인. 조익상(趙益祥)[?~?]의 본관은 풍양(豐壤)이며, 자는 서옹(瑞翁)이다. 조익상의 고조할아버지는 고려 시대에 우부대언(右副代言)을 지낸 조염휘(趙炎暉)이고, 증조할아버지는 회양도호부사(淮陽都護府使)를 지낸 조신(趙愼)이다. 할아버지는 공조좌랑(工曹佐郞)을 지낸 조안평(趙安平)이다. 아버지는 통사랑(通仕郎)을 지낸 조후지(趙厚之)이고, 어머니는...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신. 조전소(趙全素)[1601~1645]의 본관은 풍양(豐壤)이며, 자는 자현(子玄), 호는 후포(后浦)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조경(趙硬)이고, 할아버지는 조희윤(趙希尹)이다. 아버지는 목사 조박(趙璞)이고, 어머니는 홍준(洪遵)의 딸 남양 홍씨(南陽 洪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홍득일(洪得一)의 딸 남양 홍씨(南陽 洪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강위흥(姜渭興...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무신. 조중섬(趙重暹)[?~?]은 부여 출신으로 1769년(영조 45) 무과에 급제하였다. 1774년에 흥화문수문장(興化門守門將)에 제수되었고, 1775년 신문고(申聞鼓)를 통해서 민원이 접수되어 처벌을 받았다....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신. 조중소(趙重素)[?~?]의 본관은 풍양(豊壤)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조경(趙硬)이고, 할아버지는 조희윤(趙希尹)이다. 아버지는 목사 조박(趙璞)이고, 어머니는 홍준(洪遵)의 딸 남양 홍씨(南陽 洪氏)이다. 부인은 경주 이씨(慶州 李氏)이고, 아들은 조시정(趙始鼎)·조시진(趙始晉)이다. 형은 조전소(趙全素)이고, 동생은 조견소(趙見素)이다....
-
조선 전기 부여 지역에 세거한 문신. 조지서(趙之瑞)[1454~1504]의 본관은 임천(林川)이며, 자는 백부(伯符), 호는 지족당(知足堂)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전중어사 조익(趙益)이고, 할아버지는 직장 조민원(趙敏原)이다. 아버지는 사헌부감찰 조찬(趙瓚)이고, 어머니는 정참(鄭參)의 딸이다. 부인은 정윤관(鄭允寬)의 딸 영일 정씨(迎日 鄭氏)이다....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신. 조견소(趙見素)[1610~1677]의 본관은 풍양(豊壤)이며, 자는 자장(子章), 호는 성강(星江)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조경(趙硬)이고, 할아버지는 조희윤(趙希尹)이다. 아버지는 목사 조박(趙璞)이고, 어머니는 홍준(洪遵)의 딸 남양 홍씨(南陽 洪氏)이다. 부인은 황집(黃潗)의 딸 창원 황씨(昌原 黃氏)이고, 아들은 조시채(趙始采)이다. 형은 조전소(...
-
조선 전기 부여 출신의 효자. 조효공(趙孝恭)[?~?]은 부여 임천(林川)[현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사망하였을 때는 무덤가에 여막을 짓고 기거하며 몸소 제상(祭床)을 차려 절하며 애통해하였다. 곧이어 아버지까지 사망하자 염채(鹽菜)를 먹지 않고 허리띠를 풀지 않았으며, 6년 동안 죽을 먹었다고 한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저습지에서 출토된 삼국 시대 백제 목간. 「좌관대식기(佐官貸食記)」는 2008년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저습지에서 출토된 목간에 기록된 행정 문서이다. 7세기 백제 마지막 수도였던 부여에서 제작된 「좌관대식기」에는 나라에서 백성들에게 곡물과 식량을 대여하고 이자를 받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환곡 문서의 성격을 가진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정동리와 자왕리 경계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 주장산성(主葬山城)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정동리와 자왕리 경계의 주장산 정상부에 축조된 테뫼식 토축산성이다. 사비도성의 북쪽에 해당하는 금강 변의 야산 정상부에 있다. 곧, 주장산성에서 금강 일원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따라서 산성은 사비도성 북쪽 일원의 방어를 위하여 건립된 것으로 여겨진다....
-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증산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의 생활 및 무덤 유적. 증산리 1289-12 일원 유적은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증산리 일대에 있다. 부여 석성 우회 도로 개설 사업 구간에 포함되어 충청남도역사문화원에 의하여 문화재 조사가 이루어졌다. 2002년 발굴 조사를 통하여 청동기 시대 주거지 13기, 수혈 6기, 원삼국 시대 주구묘 7기, 삼국 시대 백제...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무신. 『삼국사기(三國史記)』 권28 「백제본기」에 따르면, 660년(의자왕 20) 8월에 부여풍이 이끄는 백제부흥운동군은 왜국이 보낸 군사 2만 7000명과 함께 힘을 합친 뒤 백강(白江) 어귀에서 나당 연합군과 네 번 싸웠는데, 왜군의 배 400척이 불타고 많은 병사가 몰살하였으며 풍왕은 몇 사람과 함께 배를 타고 고구려로 도망...
-
2002년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부여 능산리 사지에서 출토된 삼국 시대 백제 목간. 「지약아식미기(支藥兒食米記)」는 삼국 시대 백제에서 약아(藥兒)의 봉급을 지급한 내용을 기록한 목간(木簡)이다. ‘약아’는 약부(藥部) 같은 백제의 의약 관련 관청에서 일하였던 실무자로 추정된다. 목간의 성격은 기록, 장부, 문서를 이르는 기(記)에 해당한다. 제작 시기는 부여 능산리 사지...
-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일대에 있었던 백제 시대의 행정 지명. 『삼국사기(三國史記)』 권7 신라본기 문무왕 11년(671) 6월 조에는 “마침내 당나라 군사와 석성(石城)에서 싸워 5,300명을 목 베고 백제 장군 2명과 당나라 과의(果毅) 6명을 사로잡았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때의 석성을 석산현[진악산현]과 같은 곳으로 보기도 한다. 부여군 석성면 현내리의 파진산 지맥에는 석...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 있는 백제 왕실 사찰 터. 부여 능산리 사지(扶餘 陵山里寺址)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의 부여 왕릉원 서쪽 가까이에 있다. 부여 능산리 사지는 백제 사비도성의 외곽을 둘러싼 외곽성인 부여 나성의 동쪽에 인접하여 있기 때문에 부여 사비 시대의 외곽성을 벗어난 바로 바깥에 있는 셈이 된다....
-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쇠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던 시기의 역사와 문화. 철기 시대는 고고학 시대 구분 중의 하나이다. 광의의 철기 시대는 인류가 철을 이용하여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를 말한다. 한국에서는 철기 시대를 대신하여 기원전 300년에서 기원전 100년 정도까지의 시기를 초기 철기 시대(初期 鐵器 時代), 기원전 100년에서 서기 300년까지를 원삼국 시대(原三國時代)로...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리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청간절’로 불리우는 절이 있었다고 전하나 사찰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다만 일제 강점기에 청간사지(淸澗寺址)에서 금동 불상이 출토되어 일본인이 반출하였다고 전한다....
-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서 민무늬토기와 간석기, 청동기를 만들어 사용하던 시대의 역사와 문화. 청동기 시대는 고고학의 시대 구분 중 하나이다. 한국의 청동기 시대는 용도에 따라 전문화된 간석기와 다양한 형태와 크기의 민무늬토기가 제작 사용되었으며, 청동기 제작 기술이 보급되었다.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의 청동기 시대 유적으로는 주거지와 분묘, 수혈 유구, 농경 관련 유구 등이 확인되었...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진변리에 있는 백제 시대 절터. 청룡사지는 공주대학교에서 실시한 지표 조사 결과 백제 시대의 절터로 확인되었다. 근처 암벽에 “하류청룡사 추유백마강(夏留靑龍寺 秋遊白馬江)”이라고 새겨져 있어 ‘청룡사지’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러나 암벽 위의 면적이 약 330㎡[100여 평]으로 건물이 있기에는 협소한 데다 건물지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절의 실재 여부를 확신...
-
고려 후기 부여 홍산 지역에서 왜구를 격퇴한 무신. 최영(崔瑩)[1316~1388]의 본관은 철원(鐵原)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최정소(崔貞紹), 할아버지는 최옹(崔雍)이고, 아버지는 최원직(崔元直)이다. 어머니는 지씨(智氏)이다....
-
조선 후기 부여 지역에서 발생한 이몽학의 난 진압에 공을 세운 무신. 최호(崔湖)[1536~1597]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수부(秀夫) 또는 청중(淸仲)이다. 할아버지는 최천손(崔千孫)이고, 아버지는 벽동군수(碧潼郡守) 최한정(崔漢禎)이다. 어머니는 김계옥(金繼玉)의 딸 광주 김씨(光州 金氏)이다....
-
조선 후기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비롯한 충청우도의 저산팔구를 중심으로 보부상을 관리하던 단체. 상무사(商務社)는 상업과 국제무역 등 전국 보부상단의 업무를 관리하던 단체이다. 특히 충청도 중에서 충청우도의 저산팔구(苧山八區)로 불리는 부여(扶餘), 정산(定山), 홍산(鴻山), 임천(林川), 한산(韓山), 비인(庇仁), 남포(濫浦), 서천(舒川) 등 모시 생산지를 중심으로 각 지역의...
-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지석리에 있는 손덕조의 정려각. 충화 손덕조 정려(忠化 孫德祚 旌閭)은 손덕조(孫德祚)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효자 정려각이다. 정려각은 국가에서 충신·효자·열녀 등 모범이 되는 사람을 표창하고자 마을이나 집 앞에 세우는 건물이다. 손덕조는 20세에 어머니가 병이 나자 수년간 곁에서 간호하였으며, 어머니의 임종 직전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흘려 넣어...
-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오덕리에 있는 조선 시대 선조의 어필을 보관하기 위하여 세운 전각. 충화 오덕사 어필각(忠化 五德寺 御筆閣)은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오덕리 오덕사(五德寺)에 있다. 선조(宣祖)가 내린 어필을 봉안하기 위하여 오덕사에 세운 전각이다. 오덕사는 중종 때 왕자 복성군(福城君) 이미(李嵋)[1509~1533]의 원당(願堂)이었는데, 1570년(선조 3) 안태사(安...
-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지석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군. 충화 지석리 고인돌(忠化 支石里 고인돌)은 모두 5기가 확인되는데, 3기와 2기가 약 700m 거리를 두고 자리하고 있어 지석리 고인돌1, 지석리 고인돌2로 알려져 있다....
-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현미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군. 충화 현미리 고인돌(忠化 玄眉里 고인돌)은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소재지에서 남쪽 부여군 양화면 방면으로 약 3㎞ 떨어진 지점 도로의 서쪽에 있다....
-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현내리 탑동마을에서 작성된 동계 운영 관련 문서. 「탑동 동계책(塔洞 洞稧冊)」은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현내리의 탑동마을에서 동계를 운영하기 위하여 작성된 장부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태양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 유적. 태양리 유적(太楊里 遺蹟)은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태양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 유적이다. 2008년 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현 백제역사문화연구원]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 조사 결과 청동기 시대 돌널무덤 1기, 움무덤 1기가 확인되었다....
-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토정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무덤. 토정리 여단석관묘는 1992년부터 2003년까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실시한 부여군 백제 고분 지표 조사 과정에서 발견되었는데, 토정리산성 남측 능선 정상부에서 벽석 일부가 노출되면서 확인되었다....
-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봉정리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 파진산성(破陣山城)은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봉정리 파진산(破陣山) 정상에 축조된 테뫼식 산성이다. 금강이 좁아지는 협곡 부분에 자리하여 사비도성으로 연결되는 금강 길목을 방어하기 위하여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파진산은 금강을 따라 들어오던 당나라 군대가 백제군 때문에 진을 쳤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석성면과 장암면 사이를...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에 있는 백제 시대 팔각형의 우물. 팔각정(八角井)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의 부소산 남사면 끝자락에 있으며, 어정(御井) 혹은 궁우물로 전하는 백제 왕궁의 우물이다. 팔각정은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0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구교리에 있는 백제 시대 절터. 학리 사지(鶴里 寺址)는 일제 강점기에 충청남도 부여 지역 신궁을 만들기 위하여 숙소를 건축하던 중 다량의 연화문 수막새 등이 출토되어 절터로 추정되어 왔다. 그러나 절터로 추정할 수 있는 유구나 유물의 확인이 어려워 유적의 성격을 특정하기 어렵다....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구교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 산성. 학하토성(鶴河土城)은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구교리 구교들 한가운데 솟아 있는 야산의 구릉 정상부에 있다. 테뫼식 토축산성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일대에 있었던 통일 신라 시대 행정 구역. 본래 백제 대산현(大山縣)이던 곳을 757년(경덕왕 16)에 한산현(翰山縣)으로 고치고 가림군(嘉林郡) 소속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6 지리지3 웅주(熊州) 조에 전한다. 고려 초에 한산현을 홍산현(鴻山縣)으로 고쳤는데, 대(大)·한(翰)·홍(鴻)은 모두 ‘크다’는 뜻을 지닌 한자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합곡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군. 합곡리 고인돌(閤谷里 고인돌)은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소재지에서 남서쪽으로 약 2㎞ 떨어진 상곡마을에 있는 요양원[구 합곡초등학교] 뒤편의 나즈막한 언덕에 있다. 유적의 북쪽으로 금천이 동쪽으로 흘러 금강과 합류하는데, 주변에 평야 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합송리에 있는 철기 시대 무덤 유적. 합송리 유적(合松里 遺蹟)은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합송리에 있는 초기 철기 시대의 무덤 유적이다. 1989년 주민들이 농경지 정리 작업을 하다가 발견하였으며 많은 양의 청동기와 옥이 출토되었다....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합정리에 있는 백제 사비 시기 고분군. 합정리 고분군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서 금강 너머 서북쪽에 있는 옥천산과 수리봉에서 뻗어 내린 능선 사면에 조성된 백제 사비 시기 돌방무덤 고분군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합정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백제 시대, 조선 시대 생활 유적. 합정리 유적(合井里 遺蹟)은 백제문화단지를 조성하기 위한 발굴 조사를 통하여 청동기 시대부터 백제 시대와 조선 시대의 무덤과 주거지 등이 확인된 유적이다....
-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 존재하였던 고려 시대의 특수 행정 구역. 향(鄕)과 부곡(部曲)은 삼국 시대와 통일 신라 시대에도 존재하였고, 소(所)는 고려 시대에 생겼다. 향과 부곡의 주민들은 주로 농사를 지었고 소의 주민들은 수공업이나 광업에 종사하며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을 나라에 바쳤다. 향·부곡·소의 주민들은 일반 양인들에 비하여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였고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
-
백제 제28대 왕. 혜왕(惠王)[?~599]의 성은 부여(扶餘)이고, 이름은 부여계(扶餘季)이다. 백제 제26대 왕인 성왕(聖王)[재위 523~554]의 둘째 아들이자 제27대 위덕왕(威德王)[재위 554~598]의 동생이며, 제29대 법왕(法王)[재위 599~600]의 아버지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호암리에 있는 백제 시대 절터. 『삼국유사(三國遺事)』 남부여 조에 “호암사에는 정사암이란 바위가 있어 나라에서 재상을 선출할 적에 3~4인의 이름을 적어 함봉하여 바위 위에 두었다가 얼마 후에 개봉하여 이름 위에 도장이 찍혀 있는 자로 재상을 삼았으므로 정사암이란 이름이 생겼다”라는 기사가 확인된다. 호암사지는 1950년대 초 금동여래불상이 출토되었고, 이...
-
조선 후기 부여현감을 역임한 문신. 홍가신(洪可臣)[1541~1615]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자는 흥도(興道), 호는 만전당(晩全堂)·간옹(艮翁)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홍한(洪瀚)이고, 할아버지는 홍윤창(洪胤昌)이다. 아버지는 홍온(洪昷)이고, 어머니는 신윤필(申允弼)의 딸 흥양 신씨(興陽 申氏)이다. 부인은 이형(李衡)의 딸 재령 이씨(載寧 李氏)이고, 아들은 홍은(洪檃)·홍...
-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남촌리에 있는 금천 석홍교 중수와 관련된 조선 후기의 비석. 홍산 금천 석홍교는 원래 충청남도 부여군 남면 금천리에 있던 다리로 ‘세냇다리’, ‘쇠냇다리’라고 불렸다. 홍산 금천 석홍교와 관련한 비석은 창립비와 중창비 2기가 전하고 있다. 2기 모두 비문이 새겨져 있으나 마멸이 심하여 판독이 어려우며, 일부 내용을 통하여 1657년(효종 8) 중창비가 설립되...
-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북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객사. 홍산객사(鴻山客舍)는 조선 시대 홍산현의 관아 건물로, 각종 의례를 행할 때나 외국 사신 혹은 중앙에서 내려오는 관리들이 머물 때 사용하던 숙소이다. 홍산객사는 ‘비홍관(飛鴻館)’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안에 「객사기(客舍記)」가 있다. 조선 후기 지리지 『여지도서(輿地圖書)』에 15칸으로 기록되어 있다. 홍산객사는 1982...
-
1376년 최영이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에서 왜구를 크게 물리친 전투. 1376년(우왕 2) 7월 왜구가 침입하여 금강 유역 일대를 휩쓴 뒤 부여·공주·석성·연산현의 개태사(開泰寺) 등을 도륙하는 과정에서 양광도원수(楊廣道元帥) 박인계(朴仁桂)가 전사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최영(崔瑩)[1316~1388]이 출정을 자원하여 군대를 이끌고 홍산으로 내려와 왜구를 소탕하였다. 이에 최...
-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남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홍산현 관아의 동헌. 홍산동헌(鴻山東軒)은 조선 시대 홍산현 관아의 중심적인 건물로 수령의 집무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제금당(製錦堂)이라고도 불렸다. 홍산동헌은 1871년(고종 8) 당시 군수였던 정기화가 건립한 것으로 전한다. ‘제금당’은 미금학제(美錦學製)에서 따온 것이다. 홍산동헌 편액은 ‘정사당(政事堂)’, ‘현락당(賢樂堂)’...
-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은산리에 있는 고려 시대 무덤군. 홍산리 27-18 유적은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은산리에 있다. 은산 우회 도로 개설 공사가 예정되면서 2001년 충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에서 지표 조사를 실시하였고, 지표 조사를 통하여 부여 은산리 유적으로 알려졌다. 신석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생활 유적과 분묘 유적이 분포할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추정되었다. 200...
-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남촌리에 있는 만덕교 건립을 기념하는 조선 후기의 비석. 홍산만덕교비(鴻山萬德橋碑)는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홍산천(鴻山川)에 만덕교(萬德橋)를 건립하면서 세운 비이다. '만덕(萬德)'은 만인에게 덕을 끼친다는 뜻이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만덕교는 홍산현 객사(客舍) 앞에 있는 다리였다. 하천은 농지 정리 이후 현재는 모습을 찾을 수 없다. 18...
-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북촌리에 있는 고려 시대 산성. 홍산태봉산성(鴻山 胎封山城)은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북촌리에 있다. 야산 정상부를 둘러싼 테뫼식 토축산성으로, 토정리산성(土亭里山城) 혹은 북촌리산성(北村里山城)이라고도 부른다. 2000년 1월 11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6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 있었던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행정 구역. 조선 시대 인문 지리서인 『택리지(擇里志)』에서는 홍산현(鴻山縣)을 성주산(聖住山) 동편에 위치한 고을로 인근의 임천(林川)·정산(定山) 등과 함께 풍속이 비슷하며 여러 대에 걸쳐 거주한 사대부 집안이 많다고 설명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서는 홍산현의 풍속에 대해서 문무를 숭상하며, 누에 치기에 힘쓴다고 하였...
-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남촌리에 있는 조선 시대 홍산현 관아의 형방청. 형방은 조선 시대 군현에서 형전을 담당하던 부서, 또는 형전 일을 맡은 책임 향리로 형방청은 형방이 근무하던 곳이다. 홍산형방청(鴻山刑房廳)은 최초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1871년(고종 8)에 현감 정기화가 개건한 것으로 전하며, 비홍추청(飛鴻秋廳)으로 불린다....
-
조선 후기 부여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 홍수일(洪壽一)[1628~?]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자는 오선(五先)이다. 할아버지는 승지를 역임한 홍준(洪遵)이고, 아버지는 조지서별제(造紙署別提)를 역임한 홍여필(洪汝弼)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홍양리에 있는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절터. 홍양리 사지는 안량사(安良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전하는 곳이며, 현재 절터에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부여홍양리오층석탑만 남아 있다. 탑의 기단부는 고려 시대 탑 양식이나 탑신에서 백제 석탑의 전통이 느껴지기도 한다....
-
조선 전기 부여 출신의 문신. 홍윤성(洪允成)[1425~1475]의 본관은 회인(懷仁)이며, 자는 수옹(守翁), 호는 영해(領海)이다. 초명은 홍우성(洪禹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홍연보(洪延甫)이고, 할아버지는 홍용(洪容)이다. 아버지는 홍제년(洪齊年)이다. 첫 번째 부인은 남육(南陸)의 딸 남씨(南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김자모(金子謀)의 딸 고령 김씨(高靈 金氏)이다. 아들은...
-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화성리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화성리 사지는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화성리에 있다. 무량사에서 동쪽으로 약 5㎞ 떨어진 감봉산 남쪽 자락에 해당한다....
-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화성리 화암사에 있는 고려 전기 오층석탑. 화성리오층석탑(花城里五層石塔)은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화성리 화암사 경내에 있는 고려 전기의 석탑이다. 원래 탑 주변에서 기와 조각과 탑 조각 등이 발견되었으며, 화암사 창건 후 흩어져 있던 탑 조각을 모아 복원하였다. 주변에 지붕돌이 하나 남아 있어 원래는 오층석탑으로 추정된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
조선 후기 부여 지역으로 이주한 문신. 황신(黃愼)[1562~1617]의 본관은 창원(昌原)이며, 자는 사숙(思叔), 호는 추포(秋浦)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공조판서 황형(黃衡)이고, 할아버지는 황원(黃瑗)이다. 아버지는 정랑 황대수(黃大受)이고, 어머니는 곽회영(郭懷英)의 딸 현풍 곽씨(玄風 郭氏)이다. 부인은 원천군(原川君) 이휘(李徽)의 딸 전주 이씨(全州 李氏)이다. 동생 황...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신. 황일호(黃一皓)[1588~1641]의 본관은 창원(昌原)이며, 자는 익취(翼就), 호는 지소(芝所)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별제 황원(黃瑗)이고, 할아버지는 정랑 황대수(黃大受)이다. 아버지는 황척(黃惕)이며, 어머니는 강백룡(姜伯龍)의 딸 진주 강씨(晉州 姜氏)이다. 큰아버지 황신(黃愼)에게 입양되었으며, 양어머니는 원천군(原川君) 이휘(李徽)의 딸 전...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가증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황일호의 묘. 황일호의묘는 조선 후기의 문신 황일호(黃一皓)[1588~1641]의 묘소이다. 황일호는 1635년(인조 13) 문과에 급제한 이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가 1636년 병자호란 때 인조를 배종한 공으로 진주목사에 올랐다. 1638년 의주부윤으로 있을 때 명나라를 돕고, 청나라를 치고자 최효일(崔孝一) 등과 모의하다가...
-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신. 황재천(黃載天)[1732~1799]의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제군수를 지낸 황하신(黃夏臣)이고, 할아버지는 세자시강원사서 황상로(黃尙老)이다. 아버지는 황택조(黃宅祚)이고, 어머니는 이규한(李奎漢)의 딸 성산 이씨(星山 李氏)이다. 부인은 서명정(徐命正)의 딸 달성 서씨(達城 徐氏)이고, 아들은 황경집(黃敬緝)이다. 동생은 황재곤(黃...
-
조선 후기 부여 지역의 효자. 황진(黃璡)[1634~1666]의 본관은 창원(昌原)이며, 자는 군미(君美), 호는 아술당(蛾述堂)이다. 할아버지는 황신(黃愼)이고, 아버지는 의주부윤 황일호(黃一皓)[1588~1641]이다. 첫 번째 부인은 연안 김씨(延安 金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여산 송씨(礪山 宋氏)이다. 아들은 황하신(黃夏臣)·황하민(黃夏民)·황하필(黃夏弼)이다....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장군. 흑치상지(黑齒常之)[630~689]의 어릴 적 이름은 항원(恒元)이다. 선조의 성씨는 부여씨(扶餘氏)였는데, 흑치(黑齒) 지역에 봉해졌으므로 흑치로 바꾸었다. 증조할아버지는 흑치문대(黑齒文大), 할아버지는 흑치덕현(黑齒德顯)이며, 아버지는 흑치사차(黑齒沙次)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의열사와 삼충사에서 제향하고 있는 백제 말기의 충신. 흥수(興首)[?~?]는 백제 의자왕 때 제1품 좌평을 지낸 충신이다. 사비의 중앙 부서에서 중요 정책을 결정하는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흥수는 위기를 맞은 의자왕이 귀양지로 사람을 보내 의견을 구한 만큼, 의자왕 즉위 초 왕권 강화를 위하여 성충(成忠)과 함께 적극 노력한 인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