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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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유득공이 삼한 시대의 소국이었던 감문국을 소재로 하여 지은 한시. 「감문국(甘文國)」은 유득공(柳得恭)[1749~1807]이 전국 고도(古都)를 돌 때에 감문국(甘文國)[현재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지역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소국]에 대한 일종의 회고를 표현한 시이다. 본관은 문화, 호가 냉재(冷齋)인 유득공은 실학사대가(實學四大家), 한학사가(漢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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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주세붕이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봉계에 들렀다가 지은 한시. 「암수용추(岩秀龍湫)」는 주세붕(周世鵬)[1495~1554]이 김천시 봉산면 봉계마을에 들렀다가 지은 시이다. 본래 봉계동은 하촌[신리·예지리·인리]으로 칭하다가 1373년(고려 공민왕 22) 상촌[인의2동]으로 분리되었고, 그 후 1914년 김천군 봉산면으로 행정 구역이 개편됨에 따라 봉계동이 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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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에서 장지도의 제자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장지도의 제자」는 윤은보(尹殷保)가 스승이 돌아가시자 부친상과 동일하게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는 등 성심으로 제자의 도리를 다하였다는 인물담이다. 1983년 김천시에서 발행한 『내고장 우리향토』에 「장지도의 제자」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1999년 김천시에서 간행한 『김천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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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신리 덕원당 고문헌자료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전기에 간행된 이숭인(李崇仁)의 시문집. 이숭인[1347~1392]의 자는 자안(子安), 호는 도은(陶隱)이다. 고려 공민왕 때 등제하여 숙옹부승(肅雍府丞)을 거쳐 장흥고사(長興庫使)에 올랐다. 김구용(金九容)·정도전(鄭道傳) 등과 실록을 찬수했으며, 한때 사대문서(事大文書)를 지어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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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김천 지역에 있던 신라의 지방 행정 구역.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경상도 김산군 고적조에 “어모(禦侮) 폐현은 본래 신라의 금물현(今勿縣)이었고, 음달(陰達)이라고도 하였다. 경덕왕 때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 감문군(甘文郡)에 소속시켰다. 고려 현종 때에는 상주에, 본조 태조 때에는 본군에 소속되었으며, 지금은 직촌(直村)이 되었다.”라는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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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년부터 1413년까지와 1895년부터 1914년까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제4 신라본기 제4 진흥왕에 “18년에 국원(國原)[충주(忠州)]을 소경(小京)으로 삼고, 사벌주(沙伐州)[주치(州治)는 상주(尙州)]를 폐하고, 감문주(甘文州)[주치는 김천군(金泉郡) 개령(開寧)]를 두어 사찬 기종(起宗)으로 그곳의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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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선(金玄繕)을 시조로 하고 개령(開寧)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 신라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으로 전해지는 고려 시대에 장군을 지낸 김현선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개령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개령김씨의 시조 김현선은 『조선명신록(朝鮮名臣錄)』에 개성 김씨(開城金氏) 시조로 기록되어 있고, 『개성김씨세계보(開城金氏世系譜)』에 고려의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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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3년부터 1601년까지, 1609년부터 1895년까지의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제도. 삼한 시대에 감문소국(甘文小國)이 있었던 곳으로, 231년 신라가 감문국을 공격하여 점령한 후 감문군(甘文郡)을 설치하였다. 557년(진흥왕 18)에는 감문주(甘文州)를 두었다가 진평왕(眞平王) 대에 폐지했으나, 661년 다시 감문군을 두었다. 757년(경덕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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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경상북도 김천 지역의 역사. 918년 왕건(王建)[877~943]이 건국한 고려는 1392년 이성계(李成桂)[1335~1408]의 조선에 멸망할 때까지 34대 474년 간 존속한 왕조이다. 오늘날의 김천시(金泉市)는 1995년 1월 전국적인 지방 행정의 개편에 따라 김천시와 금릉군(金陵郡)이 통합되면서 확정되었다. 고려시대의 현 김천 지역에는 처음에는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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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관광 자원. 김천시는 예로부터 그 자연환경이 수려하여 삼산이수(三山二水)의 고장으로 불렸다. 경상북도 서남부의 관문으로 소백산맥 서남쪽으로 뻗어 충청북도, 전라북도, 경상남도와 접경을 이루고 시의 중심부를 감천과 직지천이 관통하고 있다. 황악산, 대덕산, 삼도봉, 수도산 등 고봉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어 산세가 수려하고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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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시대 지례향교(知禮鄕校)가 세워지면서부터 교동(校洞), 교촌(校村), 향교마 등으로 불리었다. 조선 말 지례군 하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교리·범박골이 통합되어 김천군 지례면 교리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지례면 교리로 개칭되었고, 1971년 교1리·교2리로 나누어졌다. 1995년 김천시 지례면 교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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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지역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고려와 조선에서 문신을 지낸 문경공 독수와(獨樹窩) 권진(權軫)의 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권희정이다. 권세호(權世豪)는 어려서부터 재종숙 죽림 권산해(權山海) 밑에서 학업을 닦았다. 후에 권세호는 한산군수(韓山郡守)가 되었으며, 선정을 베풀어 명성이 났다. 그는 평소 권산해를 흠모하고 존경하였다. 권산해는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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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부터 757년까지 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제34 잡지 제3 지리 1 신라 상주(尙州) 개령군(開寧郡)에 “개령군의 …… 영현(領縣)이 넷이다. 어모현(禦侮縣)은 본래 금물현(今勿縣) 또는 음달(陰達)이라고도 하였다.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도 그대로 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高麗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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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리는 삼한 시대 김천 지역에 자리 잡은 소국인 감문국의 도읍지가 된 이래 신라, 고려를 거쳐 조선 시대 말까지 개령군과 현의 읍치로서 김천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큰 마을 중 하나이다. 그런데 동부리가 그러한 영광 못지않게 역대 중앙 정부로부터 곱지 않은 시각과 경계, 나아가 멸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는 이가 드물다. 신라의 정복 전쟁에 대한 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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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 구례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김굉의 묘비. 김굉(金宏)[1560~1634]은 본관이 상산(商山)으로 자는 대기(大器), 호는 감개당(鑑開堂)이다. 처음 벼슬에 나아가 사근도찰방(沙斤道察訪)을 지냈고, 1609년(광해군 1) 흉년이 들었을 때 가산을 털어 백성들을 구제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1634년(인조 12) 75세의 나이로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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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지(金閼智)를 시조로 하고 김이환(金爾環)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김녕김씨의 시조는 김알지이며 본관을 김해(金海)로 써오다가 조선 헌종 때 경순왕(敬順王)의 8대손인 김시흥(金時興)의 후손들이 본관을 김녕(金寧)으로 고쳤다. 김시흥은 고려 인종 때 동북병마사로 있었으며, 삼별초의 난을 진입하는 데 공을 세워 김녕군(金寧君)에 봉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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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남산동에 있는 조선 전기 때 세워진 김득배의 제단비. 김득배(金得培)[1312~1362]는 본관은 상산(商山), 자는 국자(國滋), 호는 난계(蘭溪)이다. 불훤재(不諼齋) 신현(申賢)의 문하에서 포은 정몽주, 이우당 이경 등과 학문을 닦아 1330년(충숙왕 17) 문과에 급제한 뒤 내직과 외직을 두루 거쳤다. 1359년(공민왕 8) 홍건적이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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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9년부터 1914년까지 경상북도 김천시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제도. 1399년(정종 1) 김산현(金山縣) 관내 황악산에 제2대 정종(定宗)의 태를 안치한 후, 이웃의 어모현(禦侮縣)을 폐합하여 김산군(金山郡)으로 승격시켰다. 김산군에는 지군사(知郡事)가 파견되었다. 1. 『고려사(高麗史)』 『고려사』 제82권 지 제36 병 2 참역조에는 “경산부도(京山府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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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르는 것이 녹색 성장이다. 현재 정부에서 일자리 창출과 홍수 예방, 안정적인 수자원 확보 등을 위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4대 강 정비 사업과 함께 하천 유역의 문화와 관광 자원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는 것 또한 주목할 말한 일이다. 이것은 대표적인 자연 환경인 하천이 가진 친환경적이면서 녹색 자원으로의 활용 가능성을 확인해 준 것이라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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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르는 것이 녹색 성장이다. 현재 정부에서 일자리 창출과 홍수 예방, 안정적인 수자원 확보 등을 위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4대 강 정비 사업과 함께 하천 유역의 문화와 관광 자원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는 것 또한 주목할 말한 일이다. 이것은 대표적인 자연 환경인 하천이 가진 친환경적이면서 녹색 자원으로의 활용 가능성을 확인해 준 것이라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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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일컫는 상징어가 삼산이수(三山二水)라면 찬란했던 김천의 문화 예술을 표현하는 상징어는 단연 영남 제일 문향(嶺南第一文鄕)이라 할 것이다. 김천 지방은 삼한 시대 감문국(甘文國)으로부터 신라, 고려 시대에 이르기까지 편리한 교통을 배경으로 전략적 요충지로서 위상을 유지했는데 특히 고려 7대 목종은 군호(君號)를 김천의 옛 지명의 하나인 개령을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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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황금동에 전해 내려오는 놋쇠로 만드는 타악기 제작 기술. 김천징장은 황금동의 대표적인 무형 문화재로서 놋쇠를 이용하여 만드는 타악기 공예이다. 김천시 약물내기[황금동, 약수동]는 6·25전쟁 이전까지 경기도 안성과 함께 유기 생산으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놋쇠 식기를 비롯한 대야·요강·징·꽹과리 등에 이르기까지 국내에서 생산되는 놋쇠 기구의 대부분을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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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선초 김천 지역에 은거한 문신. 김효신(金孝信)은 본관이 해풍(海豊)으로, 고려 공민왕 대 경기도 개풍군 대성면 대릉리에서 태어났다. 사직부위에 올랐지만 고려가 망할 것을 알자 관직을 버리고 부성부원군(富城府院君)인 정윤홍(鄭允弘)과 승선(承宣)을 지낸 백귀선과 함께 김천으로 내려왔다. 백귀선은 할아버지 금릉부원군 백수의 봉군지(封君地)인 금산동으로, 정윤홍은 봉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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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다성(文多省)을 시조로 하고 문략(文略)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남평문씨의 시조는 문다성으로 신라 지증왕과 진흥왕 때 벽상공신으로 고위 관료를 지낸 인물이다. 전라도 나주 남평의 연목 석함(石函)에서 태어나 ‘문(文)’이란 글자가 돌에 새겨져 있어 자비왕이 ‘문(文)’을 성씨로 내렸다고 한다. 고려 숙종 때 좌승선(左承宣)을 지낸 문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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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윷판의 말이 네 번을 먼저 나야 이기는 윷놀이 방식. 윷놀이는 네 개의 윷가락을 던져 그것이 나타내는 형상을 통해 일정한 행로를 통과하도록 말[馬]을 놓아 승부를 겨루는 민속놀이이다. 넉동배기 윷놀이는 윷을 던져 나온 결과대로 게임을 진행시켜 윷판의 말 4개가 먼저 최종점을 통과하는 편이 이기는 놀이이다. 윷의 기원에 대해 성호(星湖) 이익(李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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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음력 6월 15일 유둣날에 논 귀퉁이 배수로에 떡을 올리는 풍속. 논고사는 유둣날 송편이나 찹쌀떡을 만들어서 논 귀퉁이의 배수구에 바치며 농사가 잘 되기를 기원하는 풍습이다. 이를 ‘논꼬지’라고도 한다. 유두에는 맑은 개울에서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한 뒤 유두 음식을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고 나쁜 일도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유두 무렵에는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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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아포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대동(大洞)[일명 한골, 함골]의 ‘동’자와 동신(東新)의 ‘신’자를 따서 대신이라 하였다. 대신은 다른 이름으로 함골이라고도 불리는데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 온다. 감천을 사이에 두고 이웃하고 있는 개령면 동부리 호두산이 풍수지리상 호랑이 형국이어서 마을 사람들이 자주 죽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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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의 개국에 반대한 고려의 충의군이 김천 덕대산 일대에서 벌인 전투. 고려 말 우왕 때 벌어진 요동정벌 때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후 정도전(鄭道傳)·조준(趙浚) 등의 급진적 개혁파와 함께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조선 왕조를 건국하였다. 그 과정에서 신왕조의 개창에 반대한 정몽주(鄭夢周)는 이방원(李芳遠)에 의해 선죽교에서 격살됨으로써 고려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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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김천 지역의 청암사를 창건한 승려. 도선국사(道詵國師)[827~898]는 15세에 출가하여 월유산 화엄사(華嚴寺)에서 승려가 되었다. 그 뒤 유명한 사찰을 다니면서 수행하다가, 846년(문성왕 8) 곡성 동리산(桐裏山)의 혜철(惠徹)을 찾아가서 무설설(無說說) 무법법(無法法)의 법문을 듣고 오묘한 이치를 깨달았다. 850년에는 천도사(穿道寺)에서 구족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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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회문(鄭繪文)을 시조로 하고 정명서(鄭命瑞)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동래정씨는 신라가 건국되고 유리왕이 6부 촌장에게 성씨를 하사할 때 본피부(本彼部) 촌장에게 정(鄭)을 사성한 것이 그 연원이 되었다. 고려 문종 때 안일호장(安逸戶長)인 정회문을 시조로 한다. 크게 6개 파로 분파되었는데, 김천 지역의 후손은 15세(世)에서 분파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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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년부터 997년까지 개령군의 영현.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제34 잡지 제3 지리 1 신라 상주 개령군(開寧郡)에는 “무풍현(茂豊縣)은 본래 무산현(茂山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도 그대로 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高麗史)』 제57권 지 제11 지리 2 전라도 진례현에는 “무풍현은 원래 신라의 무산현인데 경덕왕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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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언어와 문자를 매체로 표현하는 창작 활동. 문학이란 상상의 힘을 빌려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 예술, 또는 작품을 일컫는다. 김천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문학은 크게 고전 문학과 현대 문학의 범주에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고전 문학의 경우 고려 시대 개령현의 임춘(林椿)을 필두로, 조선 초기에 활동한 반곡(盤谷) 장지도(張志道)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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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선초 김천으로 은거한 문신. 백귀선(白貴璇)은 고려 말기 승선으로 재직하다가 조선이 개창되자 벼슬을 버리고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를 지키기 위해 김천으로 이거해 정착하였다. 김천의 금산동은 조부인 금릉부원군의 봉지(封地)였다. 조선 조정에서 여러 차례 관직을 내렸으나 거부하고 은둔 생활을 하였다. 백귀선의 자손들도 부친의 유지를 이어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처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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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총언(李悤言)을 시조로 하고 이성간(李成幹)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벽진이씨는 고려 초 개국에 공을 세워 벽진장군이 된 이총언을 시조로 한다. 2세(世) 이영(李永)은 고려 태조를 도운 공신으로 대제학을 지냈고 4세 이경석(李慶錫)은 평장사, 10세 이옹(李雍)은 판공부사를 역임했다. 15세 이존인(李存仁)의 후손인 전서공파(典書公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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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울곡리에 있는, 이숭인을 기리기 위한 조선 전기의 사당. 보본사(報本祠)는 고려 말기[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목은(牧隱) 이색(李穡), 야은(冶隱) 길재(吉再)를 삼은 (三隱)이라 하는데, 길재 대신 이숭인을 넣기도 한다]의 한 사람인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을 불천위로 제사 지내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이숭인은 고려 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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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북도 김천 지역의 관아에서 긴급한 상황을 중앙에 전하던 군사 통신 시설. 봉수는 옛날에 널리 쓰인 통신 수단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149년(고려 의종 3) 병마사 조진약(趙晋約)의 제창으로 고려에서 채택하였다. 밤에는 횃불을 올리고, 낮에는 연기로써 산봉우리에서 산봉우리로 신호를 보내어 변경의 위급을 중앙에 통보하였다. 보통 4㎞에서 16㎞마다 봉수대를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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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설치된 특수 행정 구역. 부곡(部曲)은 향(鄕)이나 소(所)와 마찬가지로 지방의 특수한 하급 행정 구역인데, 일반 양민이 아닌 노비·천민 등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모여 살던 촌락 집단이었다. 김천 지역에 부곡이 설치된 곳은 김산군(金山郡), 지례현(知禮縣), 개령현(開寧縣) 등이다. 김산군에는 굴곡부곡(屈谷部曲), 신가량부곡(新加良部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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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활동하는, 석가모니(釋迦牟尼)를 교조로 하는 종교. 불교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최고의 가르침으로 받들고 이를 세상에 펼치는 종교이다. 어느 나라에 있는 불교든 사실은 석가모니의 학설을 기준으로 삼는데,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어떻게 펼치느냐에 따라 기본적으로 소승 불교와 대승 불교로 나뉜다. 한국에 전해진 불교는 일반적으로 대승 불교이다.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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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에 있는, 부처를 숭상하고 불도를 닦고 불교 교리를 설하는 장소. 불교 사찰의 어원은 산스크리트의 상가라마(Sañghrma)이다. 교단을 구성하는 사중(四衆)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뜻으로 중국에서 승가람마(僧伽藍摩)라고 음역(音譯)하였고, 나중에 가람이라고 표기하게 되었다. 석가모니의 전도(傳道) 초기에는 일정한 주거지를 가지지 않고 불법(佛法)을 전하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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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지역을 흔히 사통팔달의 교통 도시라고 한다. 김천 지역이 교통의 요지로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삼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한 시대 김천 지역에 자리 잡은 감문국은 개령면 일대를 중심으로 성주 일대의 가야, 상주의 사벌국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하지만 경주 지역을 근거로 하여 주변 소국을 차례로 정복하며 성장한 신라의 전신인 사로국에 의해 서기 23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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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경(鄭仁卿)을 시조로 하고 정윤홍(鄭允弘)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서산정씨의 시조는 중국 송나라의 문하시랑평장사로 있다가 원나라의 건국과 함께 고려로 추방된 정신보(鄭臣保)의 아들 정인경이다. 정인경은 고려에서 안사공신(安社功臣)으로 상장군이 되고 서산군(瑞山君)에 봉군되어 서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3세(世) 정세충(鄭世忠)은 지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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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이천(利川). 자는 덕이(德以), 호는 남계(南溪), 이명은 서질. 고려 성종 때 거란의 침공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동경유수 소손녕(蕭遜寧)과의 담판으로 거란군을 철수하게 하고 강동 6주를 회복하는 데 기여한 내사시랑(內史侍郞) 서희(徐熙)의 11세손이다. 원주판관을 역임한 서강(徐强)과 양천 허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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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궁(金宣弓)을 시조로 하고 김윤양(金允讓)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선산김씨는 김알지(金閼智)를 원조로 하고 신라 46대 문성왕의 7대손이자 고려 개국공신으로 선주백(善州伯)에 봉군된 30세(世) 김선궁을 시조로 한다. 2세 김봉술(金奉術)은 고려 초 문하시중을 지냈고 14세 김주(金澍)가 고려 공양왕 때 하절사(賀節使)로 중국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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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위준(裵位俊)을 시조로 하고 배윤순(裵允詢)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성산배씨는 고려의 벽상공신(壁上功臣)인 배위준을 시조로 한다. 2세(世) 배인익(裵仁益)이 문하시랑, 8세 배보손(裵普孫)이 조선 전기 공조판서를 지낸 9세 배규(裵規)가 대사간을 지냈다. 대표적인 인물인 15세 배흥립(裵興立)은 조선 명종 때 무과에 급제하고 흥양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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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유(李純由)를 시조로 하고 이근동(李根東)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성주이씨는 신라 말 경상(卿相)으로 있다가 고려가 개국하자 성주로 은거한 이순유를 시조로 하고 고려 말 시중(侍中)에 오르고 경산부원군(京山府院君)에 봉군된 12세(世) 농서군(隴西君) 이장경(李長慶)을 중시조로 한다. 농서군의 아들 5형제가 모두 과거에 급제하며 문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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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아오고 있는 성씨. 성씨가 발생한 근원은 고대 중국의 성씨 제도의 영향을 받아 고조선 시대로부터 시작되었다. 왕족을 중심으로 다른 씨족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한 상징적인 호칭이 성(姓)으로 나타난 것인데, 처음에는 왕실 내지 귀족, 고급 관료층에서만 한정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개국과 국가 변란에 혁혁한 공을 세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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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운남리에 있는, 강민첨을 기리기 위한 일제 강점기의 사당. 강민첨(姜民瞻)[?~1021]은 고려 목종(穆宗) 때 과거에 급제한 문신이며, 명장이다. 1012년(현종 3) 안찰사(按察使)[고려 때의 지방 장관]로서 영일(迎日) 등지에 쳐들어 온 동여진(東女眞)을 무찌르고, 1018년(현종 9)에는 강감찬(姜邯瓚)의 부장으로서 흥화진(興化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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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규(朴英規)를 시조로 하고 박수종(朴守宗)과 박홍발(朴鴻發)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순천박씨는 고려의 개국공신이며 삼중대광(三重大匡)의 벼슬에 오른 박영규를 시조로 하고 고려 충숙왕 때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을 지낸 박숙정(朴淑貞)을 중시조로 한다. 김천 지역의 순천박씨는 세종 때 대흥군수를 지낸 박순명(朴順命)의 후손인 군수공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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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자미(安子美)를 시조로 하고 안연(安璉)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순흥안씨는 시조는 고려 신종(神宗) 때 흥위형보승별장(興威衡保勝別將)을 지낸 안자미이다. 순흥안씨는 판서공파(判書公派)·부제학공파(副提學公派)·한림공파(翰林公派)·서파공파(西坡公派)·검추공파(檢樞公派)·공판공파(恭判公派)로 나뉘어지고 있다. 김천 지역의 순흥안씨는 판서공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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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사(直指寺)는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에 있는 높이 1,111m 황악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직지사라는 이름이 붙여진 배경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설이 전한다. 첫째는 “수행을 통해 욕심과 번뇌를 버리고 마음을 비우면 자기 자신이 부처요, 그 마음이 곧 불심”이라는 선종(禪宗)의 핵심 가르침인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의 맨 앞 글자인 직지(直指)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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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행(權幸)을 시조로 하고 권세호(權世豪)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안동권씨의 시조는 고려의 왕건을 도와 후백제 견훤을 물리치는데 큰 공을 세운 김행(金幸)이다.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후 김행을 벽상공신(壁上功臣)으로 임명하고 권(權)을 사성(賜姓)하고 고창군을 안동부로 승격시켜 식읍으로 하사하니 이로부터 안동을 본관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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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맹영(宋孟英)을 시조로 하고 송준필(宋浚弼)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야성은 야로의 별호인데 야로는 경상남도 합천군에 속해 있는 지명으로 본래 신라 때 적화현이었던 것을 경덕왕이 야로로 고쳤다. 시조인 송맹영은 고려 목종 때 사람으로 간의대부와 총부의랑을 역임하고 나라에 공을 세워 야성군에 봉해졌다. 이때부터 후손들이 본관을 야성으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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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칭도(閔稱道)를 시조로 하고 민광수(閔光洙)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여흥민씨의 시조는 공자의 10대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민자건(閔子騫)의 후손인 민칭도로 고려에 사신으로 왔다가 귀화하여 오늘날의 경기도 여주에 해당하는 여흥에 정착한 인물로 후손들이 여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민지(閔漬)를 중시조로 하는 문인공파(文仁公派)와 대제학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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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辛鏡)을 시조로 하고 신성락(辛聖洛)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영월신씨의 원조는 신라 때 사신으로 왔다가 귀화한 것으로 전하며, 시조는 고려 예종 때 문하시중평장사를 지낸 신경이다. 9세에 이르러 상장군파(上將軍派), 영산파(寧山派)[덕재공파(德齋公派), 초당공파(草堂公派)], 영월파(寧越派)[부원군파(府院君派), 판서공파(判書公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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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리를 감싸고 있는 감문산에 오르면 멀리 마을을 회오리쳐 흐르는 감천과 드넓게 펼쳐진 개령들, 감문산으로부터 뻗어 내린 관학산과 유동산이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펼쳐 놓은 듯 아름답기만 하다. 그러나 이곳이 지금으로부터 418년 전 동부리를 비롯한 개령 읍민 절반이 희생된 비극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개령 동부리 일대는 수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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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교리에 있는 조선 전기 양효위사(兩孝爲師) 윤은보와 서즐의 정려각. 고려가 망한 후 지례에 낙향해 제자들을 가르치던 반곡(盤谷) 장지도(張志道)에게는 절효(節孝) 윤은보(尹殷保)와 남계(南渓) 서즐(徐騭)이라는 각별한 두 제자가 있었다. 두 사람은 늘 “우리를 낳은 분은 우리 부모이지만, 우리를 세상에 사람답게 길러준 분은 선생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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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金錫)을 시조로 하고 김승조(金承祖)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의성김씨의 시조는 경순왕의 아들 김석으로 고려 광종 때 광평시랑(廣評侍郞)을 지내고 의성군(義城君)으로 봉군됨으로써 본관을 의성으로 삼았다. 13세(世) 김용초(金用超)가 전라병마절제사를 지냈고, 조선 개국공신에 오르면서 가문이 번성했는데 그 후손 중 김천에는 상금파(上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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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기 김천 지역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호는 송월당(送月堂). 할아버지는 광정대부(匡靖大夫) 정당문학(政堂文學) 이언충(李彦冲)이며, 아버지는 밀직부사 이광익(李光翊)이고, 장인은 판서 백광비(白光庇)이다. 아들로 승려 상부(尙孚)와 이종(李悰)을 두었다. 이사경(李思敬)은 1356년(공민왕 5) 서북면병마부사(西北面兵馬副使)를 지내고, 뒤에 판사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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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성산(星山). 아버지는 이문광(李文廣)이며, 셋째 아들이다. 성산 이씨 정언공파의 파조이며, 아들로 이우가 있다. 이우는 세종 때 진주목사를 거쳐 경기좌도수군첨절제사를 지냈으며, 성주군 한개마을로 거처를 옮겨 성산 이씨 집성촌을 이룬 입향조이다. 이여량(李汝良)은 1354년 김천시 개령면에서 태어났다. 1380년(우왕 6) 생원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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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김천 지역에 낙향한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고려 시대 대장군을 지낸 이성간(李成幹)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공조판서를 지낸 이회목이며, 이존실은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으로 이존인(李存仁), 이존의, 이존례(李存禮)가 있다. 아들 이덕손은 무과에 급제하여 거제현령을 지냈다. 김천의 청백리로 유명한 이약동(李約東)이 손자이다. 이존실(李存實)은 고려 말 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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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김천 지역에 낙향한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호는 두은. 고려 시대 대장군을 지낸 이성간(李成幹)의 현손으로 공조판서를 지낸 이회목의 4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으로 이존의, 이존례(李存禮), 이존실(李存實)이 있다. 이존인(李存仁)[1344~?]은 남달리 총명하였고 형제간의 우애와 효심이 특출하여 촉망을 받았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문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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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김천 지역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할아버지는 밀직부사 이광익(李光翊)이고, 아버지는 고려 두문동 72현의 일인인 이사경(李思敬)이다. 이종은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은 승려 상부(尙孚)이다. 이종(李悰)은 밀직제학 장원(長源) 김도(金濤)의 문인이었다. 1377년(우왕 3) 십운시(十韻詩)에 1등 3명으로 급제하여 명운을 얻었다. 스승인 김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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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373년(공민왕 22) 부성부원군(富城府院君) 서산 정씨 정윤홍(鄭允弘)이 봉계(鳳溪)로 옮겨 오면서 다섯 아들 정사인(鄭斯仁)·정사의(鄭斯義)·정사예(鄭斯禮)·정사지(鄭斯智)·정사신(鄭斯信)의 이름 끝 자를 각각 따서 인의리, 예지리, 신리라 하였다. 조선 말 김산군 파미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중리·직동(直洞)이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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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아포읍 예리에 있던 조선 시대 서원 터. 일신서원은 고려 말 충신들을 배향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배향 인물은 송월당(送月堂) 이사경(李思敬)과 목은(牧隱) 이색(李穡)이다. 이사경은 고려 공민왕 시기이던 1356년에 서북면 병마부사를 지낸 후 판사재감사(判司宰監事)에 올랐다가 나라가 쇠약해짐을 보고 아들 5형제를 데리고 김천 개령으로 돌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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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김천 지역에 기거한 문인. 본관은 예천(醴泉). 자는 기지(耆之), 호는 서하(西河). 고려 건국 공신의 자손으로 할아버지는 평장사(平章事)를 지내고 충경(忠敬)이라는 시호를 받은 임중간(任仲幹)이고, 아버지는 한림원학사를 지내 귀족 사회에서 정치적·경제적 기반을 지닌 임광비(任光庇)이다. 역시 한림원학사를 지낸 큰아버지 임종비(任宗庇)에게 학문을 배웠다.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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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호는 반곡(盤谷). 아버지는 경상도 청하현감(淸河縣監)을 지낸 장을포(張乙浦)이고, 큰아버지는 운봉현감(雲峰縣監)을 지낸 장을해(張乙海)이다. 후손은 없다. 장지도(張志道)[1371~?]는 김천시 지례면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절의가 굳었다. 공민왕 때 향시에 합격하고 곧이어 문과에 급제하여 기거주지의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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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경(魏鏡)을 시조로 하고 위대홍(魏大弘)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장흥위씨는 신라 선덕여왕 때 당태종(唐太宗)이 보낸 사신[8학사]중 한 사람인 위경이 귀화하면서 정착해 시조가 되었고, 고려 태조 때 대각관시중(大覺官侍中)을 지낸 위창주(魏菖珠)를 중시조로 하고 있다. 이어 3세(世) 위보(魏補)는 중랑장, 5세 위기로(魏耆老)는 평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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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李棹)를 시조로 하고 이사경(李思敬)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전의이씨의 시조는 고려 태조를 도와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 공을 세워 전산의(全山侯)에 봉해진 이도이다. 2세(世) 이강(李康)은 대장군, 3세 이수영(李秀英)은 병부상서, 4세 이문경(李文景)은 대장군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무관 고위직을 배출했다. 8세에 이르러 주부공파(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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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신. 정성량의 본관은 서산(瑞山)이고 정인경(鄭仁卿)을 시조로 한다. 할아버지는 군기부정(軍器副正)을 지내고 부성부원군(富城府院君)에 봉군된 서산 정씨 김천 입향조인 정윤홍(鄭允弘)이고, 아버지는 예안군수를 지낸 정사인(鄭斯仁)의 둘째 아들이다. 정성량(鄭成良)[?~?]은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 봉계마을에서 태어났다. 서산 정씨(瑞山鄭氏)의 5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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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김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서산(瑞山). 중국 송나라의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로 있다가 원나라의 건국과 함께 고려로 추방된 정신보(鄭臣保)와 정인경(鄭仁卿)으로 가계의 이어지는 후손이다. 직계 선조인 정인보는 고려에서 안사공신(安社功臣)으로 상장군이 되고 서산군(瑞山君)에 봉군되었다. 아버지는 정인경의 4세손인 판장작감사(判將作監事) 정숙(鄭璹)이며, 둘째 아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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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의 남동부에 있는 법정면. 조마면은 기원전 82~57년에는 변한(弁韓) 시대의 12국가 중 주조마국(走漕馬國) 또는 졸마(卒麻)에 속하였다. 신라 경덕왕 시대인 742~765년에는 상주목 개령군 조마부곡이었으며 고려 때 김산군에 편입되었다. 1718년(숙종 44)에 간행한 『금릉지(金陵誌)』에는 김산군 조마남면(助馬南面)으로 기록되어 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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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섭(全聶)을 시조로 하고 전몽봉(全夢鳳)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죽산 전씨의 시조는 백제의 개국 공신인 전섭으로 고려의 항몽전쟁 때 공을 세운 28세(世) 전한(全僩)이 좌리공신 죽산군(竹山君)으로 봉군되면서 죽산[현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을 세거지로 하여 후손들이 살면서 본관으로 삼았고 이로서 전한을 중시조로 하였다. 5세 전공취(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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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덕면의 중심이 되는 마을이어서 중산(中山)이라 하였다. 마을 뒷산인 중산이 마을 이름으로 굳어졌다고도 한다. 조선 말 지례군 하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중산·다화(多花)가 통합되어 김천군 대덕면 중산리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대덕면 중산리로 개칭되었고, 1960년 중산이 중산1리, 다화가 중산2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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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성(張日成)을 시조로 하고 지례(知禮)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 지례장씨의 시조인 장일성은 고려 개국 공신 태사공 장정필의 13세손으로 고려 충숙왕 때 문과에 급제하고 이성계(李成桂)를 도와 아지발도(阿只拔都) 토벌에 공을 세워 지례백(知禮伯)에 봉군되어 후손들이 봉군지 지례를 본관으로 했다. 조선 시대에는 1584년 장문길(張文吉)이 무과에 급제하고,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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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년부터 1895년까지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제도. 신라 시대에는 지품천현(知品川縣)이라 불렸으며, 757년(경덕왕 16)에 지례현(知禮縣)으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어모현, 무풍현, 김산현과 함께 개령군(開寧郡)의 영현이 되었다. 1.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사기』 권 제34 잡지 제3 지리 1 신라 상주 개령군에 “개령군(開寧郡)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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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에 속한 법정리. 조선 말 지례군 하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상지리(上智里)·하지리(下智里)가 통합되어 김천군 부항면 지좌리(智佐里)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부항면 지좌리로 개칭되었고, 1995년 김천시 부항면 지좌리가 되었다. 마을 앞으로 부항천이 흐르고 그 주변으로 넓은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지좌리는 부항면 소재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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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부터 757년까지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고려사(高麗史)』 제57권 지 제11 지리 2 상주목 경산부(京山府)조에는 “지례현(知禮縣)은 원래 신라의 지품천현(知品川縣)인데 경덕왕이 지금 명칭으로 고쳐서 개령군의 관할 현으로 만들었다. 현종 9년에 본 부에 소속시켰으며 공양왕 2년에 감무를 두었는바 구성(龜城)이라고도 부른다.”라고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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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성보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에 간행된 불서(佛書).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은 송나라 고승 도원(道源)이 역대 법맥과 법어를 수록한 불서로, 조선 시대에는 승과의 한 과목이었다. 인도에서 중국에 이르는 방대한 선종의 법맥(法脈) 전승을 총 30권으로 정리해 놓은 책이다. 고려와 조선 시대 승과(僧科)에서 선종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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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성보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려 후기에 간행된 불서. 직지사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은 1226년(고종 13) 고려의 선승 혜심(慧諶)이 수선사(修禪社)[현 송광사]에서 제자 진훈(眞訓) 등과 함께 선가의 옛 화두(話頭) 1125칙과 이에 대한 여러 선사들의 염(拈)·송(頌) 등 강령의 요지를 모아서 30권으로 편찬한 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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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적비. 직지사는 신라 말 고려 초에 능여대사가 활동하여 고려 태조가 대찰로 창건하였다. 이곳에 왕희지(王羲之) 글씨를 집자한 비가 있었는데, 조선 세조 때 학조(學祖)가 중수하였고, 임진왜란으로 피해를 입어 유실되었을 때 중창하였다. 직지사 사적비는 1681년(숙종 7)에 조종저(趙宗著)가 짓고 낭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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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사에 있는 고려 전기 불상. 직지사 사천왕상은 사천왕문 안에 있는 거대한 4개의 소조 불상으로 936년(고려 태조 19)에 능여대사(能如大師)가 직지사 중창 시에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사천왕문이 일부 화재를 입었으나 사천왕상은 크게 훼손되지 않았다. 이후 승려 추담(秋潭)이 사천왕상을 부분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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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에 있는 고려 전기 석조 나한좌상. 직지사 석조나한좌상은 인천시 강화도 전등사에 있던 것을 1996년에 직지성보박물관으로 옮겨서 보관하고 있는데 서운선사(瑞雲禪師)의 원불(願佛)이라고 전해져 온다. 1997년 9월 29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96호로 지정되었다. 직지사 석조나한좌상은 화감암을 사용하여 아주 사실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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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은 예부터 사통팔달의 교통 요충지로 불릴만치 교통이 발달했다. 한반도 남부의 중앙이자 충청, 전라, 경상도가 만나는 지리적 이점은 삼국시대로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김천의 발전을 이끄는 동력원이 되었다. 따라서 김천은 전형적인 역촌(驛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려시대로부터 남산동에 설치된 역참제도하에서의 김천역은 1895년 갑오경장 이후 우정국이 신설되면서 폐지된 후 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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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첨(姜民瞻)을 시조로 하고 강설(姜渫)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진양강씨의 시조는 고려 현종 때 강감찬과 함께 거란과의 전쟁에서 공을 세운 은열공 강민첨이다. 중시조인 강감찬의 출생지가 진주인 관계로 진주의 옛 이름인 진양을 본관으로 삼았다. 진양강씨 학사공파로부터 분파된 16세(世) 찰방공 강설이 광해군의 폭정과 부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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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룡(曺繼龍)을 시조로 하고 조심(曺深)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창녕조씨의 시조는 신라 진평왕의 사위인 조계룡이며, 중시조는 고려 태조 왕건의 사위인 조겸(曺謙)이다. 시조인 조계룡이 창녕 화왕산(火旺山)의 용지(龍池)에서 잉태되었다는 전설이 있어 본관을 창녕으로 삼았다고 한다. 김천 지역의 창녕 조씨는 6세(世) 좌찬성 조경수(曺敬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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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음력 4월 8일 석가모니 탄신일을 맞아 등을 내어 다는 풍속. 연등절은 등(燈)을 내어 달고 불을 켜는 명절이라는 뜻으로 석가모니가 탄생한 사월 초파일[음력 4월 8일]을 일컫는 말이다. 이를 ‘관등절(觀燈節)’, ‘등절(燈節)’ 등이라고도 한다. 또 등불을 밝히고 밤을 지새우는 날이라는 뜻에서 방등일(放燈日)이라고도 한다. 『고려사(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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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시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성을 다한 신하. 김천 지역의 충신을 기록한 자료로는 『품천지(品川誌)』, 『금릉승람(金陵勝覽)』,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교남지(嶠南誌)』, 『금릉군지(金陵郡誌)』 등이 있다. 김천 지역의 충신을 유형별로 나누면 조선 개국에 항거하거나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해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충신은 두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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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있는 예배의 주요 대상이 되는 불교 조형물. 탑은 산스크리트어[범어]로 스투파(stupa), 또는 팔리어로 투파(thupa), 한역으로 번역하여 탑파(塔婆)라고도 한다. 탑은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로 이루어져 있다. 탑은 재질에 따라 목탑, 석탑, 전탑, 모전전탑, 청동탑, 금동탑 등으로 분류된다. 우리나라 초기의 탑은 목탑이었지만 현재 남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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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신달(尹莘達)을 시조로 하고 윤석빙(尹碩聘)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파평윤씨의 시조는 고려 건국에 공을 세워 공신에 오른 윤신달이다. 윤신달이 파평산(坡平山)에서 태어났다는 전설에 따라 본관을 파평이라 했다고 한다. 김천 지역의 파평윤씨는 7세(世) 윤돈신(尹焞信)의 후손이다. 15세 윤곤(尹坤)이 좌명공신(佐命功臣)으로 이조판서에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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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숭겸(申崇謙)을 시조로 하고 신작(申焯)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평산신씨는 왕건을 도와 고려를 건국하는 데 공을 세운 신숭겸을 시조로 한다. 태조 왕건은 신숭겸과 더불어 사냥을 나갔다가 날아가는 기러기를 맞히자 크게 칭찬하며 사냥터 일대 땅 300결을 하사하고 평산[현 황해도 평산군]으로 본관을 삼게 했다. 15세(世) 신개(申槩)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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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김천 지역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곡산(谷山). 자는 백희(百熙), 호는 정포(靜浦). 증조할아버지는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문하평장사 한예(韓銳)이고, 할아버지는 정당문학(政堂文學) 한진(韓瑨)이며, 아버지는 관찰사 한방좌(韓邦佐)이다. 아들로 한권(韓卷)을 두었다. 한옹(韓雍)[1352~1425]은 개경에서 태어났으며, 아량과 재질이 탁월하였고 학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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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김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남양(南陽). 아버지는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를 지낸 홍균(洪鈞)이다. 홍녹주(洪祿遒)는 지금의 김천시 개령면에서 태어났으며, 무예에 조예가 깊고 용감하였다. 1269년(원종 10) 서북면병마사가 되었다. 서북면 지역은 아버지 홍균이 두 번이나 역임한 곳으로, 홍균의 은공과 선정을 잊지 않은 백성들은 홍녹주를 열렬히 환대해 주었다....